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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도 아버지 차고서 꿈 키웠다 … 산기원 ‘창의공작실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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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창의공작 플라자에서 어린이들이 공작기계를 이용해 철판을 가늘게 펴고 있다. [오종택 기자]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차고에서 뚝딱이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이런 저런 모형을 만들면서 창의성과 영감을 키웠다. 동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처음 애플을 창업한 곳도 바로 그 차고였다.

 잡스처럼 창의력 넘치는 기업가를 배양하기 위한 장소가 한국에 생겼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하 산기원)과 금천구청이 서울 독산동의 아파트 밀집지역 안에 만든 ‘창의공작 플라자’가 그것. 지난달 말 문을 연 이곳은 200㎡ 크기 공간에 각종 공구는 물론 웬만한 중소기업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30여 종의 공작기계를 갖추고 있다. 철판에 구멍을 뚫는 드릴링 머신, 페인트를 뿜어 칠을 하는 컴프레서, 주물을 만들 수 있는 유리가마 등이 망라돼 있다.

 지난달 27일 창의공작 플라자에서 만난 초등학교 4년생 세민이(10)는 “학교만 끝나면 이곳으로 달려온다”고 말했다. 세민이는 그동안 여기서 하루 두세 시간씩 친구들과 어울려 고양이 모양 모빌과 올빼미 시계를 만들었다. 친구들도 구슬땀을 흘려가며 책꽂이, 앵그리버드 인형, 귀고리, 반지 등을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세민이는 “처음엔 뭘 만들까 고민이 많았는데 앞으로는 비행기도 만들고 나만의 차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공작실에 초등 3년 아들을 보낸 주부 유수연(41)씨는 “안 보던 과학책을 찾아보며 자꾸 엉뚱한 걸 만들겠다는데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이달 초부터는 초등생 40명과 중학생 20명이 4주짜리 공작실습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당초 이곳은 낡은 책상이나 의자 등을 보관하던 금천구청의 창고였다. 그러던 것이 산기원이 2억5000만원을 내놓고, 금천구청은 부지를 제공하면서 ‘창의력 양성소’로 변신했다. 여기에 서울과학기술대 조형대 교수 7명과 목공예 분야의 최고 명장 4명이 공작 프로그램을 짜고 청소년들을 직접 가르치는 지도자로 참여하고 있다.

 창의공작 플라자의 소장을 자임한 서울과학기술대 서진환(금속공예학과) 교수는 “창의성은 책상 앞이 아니라 손끝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창의성은 영어나 수학을 공부한다고 높아지는 게 아니라 손으로 물건을 만들며 뇌를 움직여야 길러진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10년 뒤 스티브 잡스 같은 창의적 인재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애플의 창업자인 잡스는 각종 공구가 구비돼 있는 아버지 차고에서 기술을 습득하며 창의성을 길렀다고 한다.

 창의공작 플라자는 초등생들에게는 간단한 장신구 등을 만들며 공작의 흥미를 키우도록 하고, 중학생들에겐 태양열 저장고를 만드는 등의 프로그램을 준비해 놓고 있다. 주변의 학교에서도 이곳에 기대를 하고 있다. 박승선 가산초 교장은 “요즘 학교는 공구도 없고, 오랜 시간 공을 들이는 ‘노작(勞作)’ 교습 노하우가 있는 교사도 없어 실과시간이 죽어 있다”며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다양한 공구를 갖고 마음껏 상상을 해가며 공작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산기원은 앞으로 지방 곳곳에 창의공작 플라자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김용근 산기원 원장은 “특히 요즘 청소년들은 아파트단지에 살다 보니 손끝을 움직이며 뭔가를 만들 공간이 없다”며 “국가 경쟁력을 높일 창의적 인재 육성을 위해서라도 공작실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재들 창의력 어떻게 키웠나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초등생 때 공부는 바닥이었지만 자동차 정비일을 하던 아버지 차고서 각종 공구 갖고 놀고 고교 때 휼렛팩커드서 인턴하며 PC 제작 기술 익혀.

제임스 캐머런 (영화감독)

어릴 때부터 자연사 박물관에서 나비 표본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밤마다 담요 뒤집어 쓰고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공상과학소설 에 빠져 살아.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 창업자)

수학 교수이던 아버지에게서 틀에 박힌 학교 교육 대신 교구나 교재 활용해 무엇이든 스스로 부딪혀 배우는 방식의 체험교육 받으며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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