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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 승계는 제2의 창업, 빡빡한 상속제도가 걸림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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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호 22면

가업 승계는 제2의 창업이다. 상속·증여세는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지만 제2의 창업을 저해하는 양면을 지녔다. 상속인에 대한 과중한 부담이 될 경우 기업의 안정적·지속적 성장을 막는 것이다. 세계 최대 손톱깎이 회사였던 쓰리세븐의 창업주 김형주 회장이 작고한 뒤 후세들이 회사를 처분한 이유 중 큰 것이 상속세 부담이었다.

김중래의 稅테크 <끝>

창업 1, 2세대의 은퇴가 봇물을 이루면서 가업 승계를 고민하는 오너가 늘었다. 지난해 12월 가업승계 조세지원 한도가 확대됐지만 그 대상이 아닌 기업인들의 고민은 줄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가업승계 조세지원제도를 이런저런 제한이 많은 편이다. 선진국은 우리보다 훨씬 친기업적이다. 해외 가업승계 지원제도는 어떤지 한번 살펴보자.

먼저 영국의 기업자산상속공제제도(Business Property Relief)를 보면, 기업을 상속받는 사람이 2년 이상 해당 사업체를 경영하면서 사업목적에 쓰는 중요 기업자산에 대해 세금을 공제해 준다. 가령 상장주식·토지·건물·기계·설비 등은 50%를, 비상장주식은 100%를 공제해준다. 공제 때 기업 규모에 대한 제한이 없고 기업승계 이후 별도의 사후관리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

기업승계 지원제도가 가장 잘돼 있다는 독일의 경우 승계 후 경영기간과 고용 유지 규모에 따라 상속세의 85~100%를 줄여 준다. 독일은 피상속인의 지분율이 가족의 지분과 합산해 25% 이상일 경우 기업의 사업용 자산이나 주식회사(또는 유한회사) 지분에 대해 이런저런 단서 조항 없이 세제혜택을 준다. 기업 승계 이후 5년간 사업을 영위하고, 이때 지급한 임금합계가 상속 당시 임금지급액의 400% 이상이면 상속세를 85% 경감한다. 또 승계 이후 7년간 사업을 영위하고 지급한 임금합계가 상속 당시 임금지급액의 700% 이상이면 상속세를 면제한다. 임금지급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경감 세액 중 미달 부분만큼만 추징해 부담이 덜하다.

일본은 경영승계원활화법에 의해 비상장법인을 손쉽게 승계할 수 있도록 한다. 지분율 50%를 초과하는 중소기업 비상장주식을 상속할 경우 주식가액의 80%에 해당하는 상속세 납부를 유예해 준다. 이후 일정 기간 고용과 경영 등에 대한 의무를 이행할 경우 유예세액 중 일정 금액의 납부를 면제한다. 하지만 상속 이후 5년간 의무 요건을 유지하지 못하면 조세지원액 전체가 취소된다. 5년 뒤에는 상속받은 주식의 양도비율에 상당하는 유예세액을 납부해야 한다. 이때 조세지원 대상은 비상장 중소기업으로 국한한다. 피상속인이 사업을 얼마나 더 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은 없다.

우리나라는 공제한도가 있는 데다 이런 나라들보다 충족 요건이 강한 편이다. 특히 10년간의 사후관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상속세를 전액 추징한다는 점, 다수의 기업을 운영하는 경우에도 상속인 1인이 모든 기업을 승계받아야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조세부담이 과중하면 기업자산을 해외로 빼돌려 국부 유출을 초래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경제성장 여력이 잠식당한다. 기업승계 과정에서 자산을 사외로 유출하는 것도 기업의 성장과 고용창출 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상속·증여세는 그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편익분석이 면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 필자는 여러 가지 절세 방안을 소개했다. 거듭 강조하면 절세에는 철저한 사전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고 상황마다 절세 수단의 적용 방법이 달라진다. 절세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세금 관련 의사결정 때는 조세 전문가의 조언을 받고 탈법·불법적인 납세 관행에 솔깃하면 안 된다. 부자들이 납세의무를 적절히 수행해야 가업승계 과정에서 조세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공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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