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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둥이 엄마' 김지선 "넷째 가졌을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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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개그우먼 김지선씨는 “남편과 네 아이로부터 얻는 행복이 밖에서 얻는 그 어떤 성취감보다 크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얼마 전 한 방송작가가 개그우먼 김지선(40)을 찾아와 프로그램에 나와달라고 했다. “특별히 하실 건 없고요, 그냥 웃으시면 돼요. 김지선씨가 환하게 웃으면 화목하고 훈훈한 프로라는 이미지가 생기거든요.” 한때 앙칼진 북한 사투리와 섹시한 춤 솜씨로 유명했던 그는 이제 아이 넷을 둔 ‘다산맘’ ‘국민 며느리’가 됐다. 식당·대중 목욕탕 어딜 가든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환호하고 응원과 격려의 인사를 건넨다. 직접 만나본 그는 깔깔깔·푸하하·호호호…여전히 웃음 많고 입담은 청산유수. 어라?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무슨 얘길 해도 ‘에이, 그거 별거 아냐. 괜찮아’라며 보듬어 줄 것 같은 푸근함이 물씬 느껴진다. 5월, 그는 ‘리얼 엄마’다.

 ‘다산 엄마’ 이미지 자리 잡아

 동갑내기 남편과 결혼 10년차! 벌써 아이가 넷이네요. 누가 애들 나이를 물으면 자동으로 “9·8·6·4”라고 해요. 숫자로 나열해서 미안하지만 어쩌겠어요. 그렇게 해야 기억이 되는데. 오늘은 ‘어린이날’이네요. 저 어렸을 땐 선물은 고사하고 먹는 것 하나도 풍족하지가 않았죠. 오빠·저·여동생·남동생 넷이 포도 한 송이를 먹으면 순식간에 싹 없어졌으니까. 그 시절을 떠올리며 애들한테 한마디해도 될까요? 우리 예쁜 세 아들 지훈이 정훈이 성훈이, 그리고 막내딸 혜선이! 엄마 아빠가 올해도 어린이날 선물을 줄 거야. 그런데 너희는 ‘어버이날’ 무슨 선물을 줄 거니? 너희랑 똑같이 엄마도 선물 받으면 기분 좋거든. 또 달랑 카드만 써 줬단 봐라. 영어로 기브앤드테이크야. OK?

사실 요즘같이 풍족한 시대에 어린이날에는 선물을 주면서 아이에게 하는 얘기도 중요한 것 같아요. 이 선물 하나를 사기 위해 엄마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애들도 알아야 하거든요. 애들도 다 알아들어요. 큰애가 여섯 살 무렵 날마다 장난감을 사 달라기에 앉혀놓고 얘기를 했어요. “지훈아, 이건 정말 정말 비싼 장난감이야. 그걸 사려면 엄마가 밖에 나가서 일을 무지 열심히 해야 해. 엄마는…얼마나 힘든지 몰라….” 얘기하다 저도 모르게 설움에 복받쳐서 울었죠. 그랬더니 아이가 절 빤히 보더니 일 년 동안 장난감 사 달란 말을 안 하더라고요. 뭐, 물론 둘째·셋째는 안 그래요. “엄마가 너 장난감 사주려고 일을 그렇게 많이 했음 좋겠어?” 그랬더니 단박에 “네. 지금 일 가면 안 돼요?” 그러던걸요. 아이고, 내가 못 살아. 아직 키울 날이 창창하지만 그래도 우리 애들 다 복덩이예요. 마흔 넘긴 엄마들, 특히 연예인, 그중에서도 개그우먼들이 살아남기가 참 힘든 세상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 바닥에서 이성미·김미화·박미선·이경실·조혜련 계보를 이으며 활동하고 있어요. 그게 다 ‘다산 엄마’의 이미지로 자리를 잡은 덕인 것 같아요.

철저한 자기관리로 44 사이즈

 저 이래봬도 ‘44 사이즈’예요. 세상에 안 찌는 사람 없어요. 먹으면 찌는 거죠.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빠지는 게 살이라는 놈이에요. 저도 운동하고 식이요법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엉엉 운 적도 있어요. 새벽 5시40분에 일어나 6시면 운동하러 나가니 매니저가 ‘저 누나 진짜 독하다’고 할 거예요. 살 빼는 건 식이요법이 80%고 운동이 20%예요. 저도 굶진 않았지만 탄수화물·소금기·설탕을 줄이고 단백질 위주로 식사를 했어요. 지금도 잡곡밥을 싸 가지고 다니는걸요. 일단 식이요법 해서 어느 정도 몸을 만들어 놓으면 나중엔 이 몸이 아까워서라도 덜 먹게 된다니까요. 스타 트레이너인 숀리가 그랬어요. ‘먹고 나서 빼지’가 아니라 ‘먹고 싶은 걸 먹기 위해 운동을 한다’고요. 일주일에 3~4일은 집에서 다이어트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하든, 헬스클럽을 가든 꾸준히 운동을 해요. 반신욕도 자주 하고요. 아줌마가 왜 이렇게 운동에 목숨 거느냐고요? 음…제가 셋째 낳고 과로로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덜컥 겁이 났어요. ‘내가 잘못되면 애들은 어떡하나. 애들 결혼하는 것도 다 보고, 막내딸 산바라지(해산을 돕는 일)까지 해 주려면 무조건 운동해서 건강해야겠다!’

또 하나, 이거 아주 중요해요. 정말 멋진, 핫(hot)한 엄마로 살고 싶기 때문이에요. 남편한테 절대 중고(?)로 보이면 안 돼요. 애 넷 낳았다고 여자가 배 축~처져 있으면 안 된다고요. 남편도 항상 긴장할 수 있게, 뒷모습 보면 ‘어이, 아가씨?’ 이럴 수 있게! 물론 그러다 앞모습 보면 ‘허걱!’ 하겠지만요. 하하하. 빅토리아 베컴도, 정혜영씨나 가수 김혜연씨도 다들 다둥이 엄마인데 몸매 좋잖아요. 날씬하고 활기찬 엄마가 대세라고요. 아 참, 저 지난해 비키니 입은 거 보셨죠? 호호호.

넷째 생겼을 땐 저희도 놀랐어요

서울 한남동의 한 스튜디오에 김지선·김현민씨 가족이 모였다. 사진을 위해 한껏 멋은 냈지만 개구쟁이 세 아들 덕에 촬영장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사진 우먼센스]

 휴……. 한숨부터 나네요. 저요, 터울 없이 따박따박 애들을 낳아놓았으니 전화통을 붙들고 살았어요. ‘엄마 시간 돼? ‘어머니, 저 혹시 오늘 좀….’ 아이 봐 주는데 부모님들이 다 동원됐죠. 남편이 식당을 운영해서 그나마 시간을 낼 수 있었는데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매일 눈물로 보냈습니다. 친정집에 못할 짓도 많이 했어요. 부모님을 이산가족 만들어 놓고…. 정말 나라에 읍소하고 싶어요. 출산장려금 아무리 줘봤자 육아 제도를 제대로 마련해 주지 않으면 절대 다산의 나라가 될 수 없어요. 그리고 아무리 조부모가 손주를 봐 주더라도 엄연히 노동이니 나라에서 지원을 해줘야 해요. 집에는 상주하는 아주머니와 출퇴근하는 아주머니가 있어요. 애 하나를 목욕시키고 있으면 저쪽에서 세 살짜리가 한 살짜리 때리고 밟고…누구 한 사람은 지키고 있어야 해요. 예전 엄마들은 예닐곱 명을 어떻게 키웠을까요.

사실 ‘셋은 낳자’는 마음은 있었어요. 제 경험을 돌아보면 어릴 때 부족한 듯 자란 게 자립심 키우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된 것 같더라고요. 특히 살면서 어렵고 힘든 일을 겪을 때 형제자매만큼 힘이 되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재산 대신 형제자매를 물려주자’고 마음먹었죠. 그런데 넷째가 생겼을 때는 저도 놀랐어요. 남편이요? 얼굴색이 흑빛이더라고(웃음). 그러고 보니 지난해 드디어 8년 만에 집에서 기저귀가 사라졌네요. 만세! 물론 새로운 압박이 생기고 있죠. 태권도·피아노 등 각종 학원이요. 애들이 많다 보니 더욱더 교육에 대한 확실한 소신이 있어야겠더라고요. 제가 연예계 생활을 쭉 해보니까 공부 잘한다고 꼭 성공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스펙 좋고 집안 좋은 사람들이 성공할 순 있겠지만 도에 지나친 삶을 누리며 아무것도 모르고 나이만 먹는 사람도 많아요.

제 교육관이요? ‘아이가 싫어하는 것은 시키지 말자’예요. 다만 어릴 때 기회는 다양하게 줘봐야 해요. 예를 들어 첫 애는 아홉 살인데 만날 ‘졸라맨’만 그리고 미술에 꽝이었어요. 애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미술 시간마다 우는 거예요. 그래서 설득을 시켰죠. “네가 미술 못하는 건 안 해봐서 그래. 사람은 처음엔 누구나 다 못해. 한번 해보고 그때도 안 되면 하지 말자.” 그래서 딱 한 번 학원을 갔는데 그 다음에 학교에서 상을 받아 오더라고요. 제가 다 놀랐어요. 대치동 사는 제 친구들, 한밤중까지 애들 이 학원 저 학원 실어다 나르느라 바빠요. 제가 딱 정리해 주죠. “야, 대치동에서 반에서 13등이면 끝난 거야. 다른 거 시켜!” 하긴 제가 좀 느슨하게 키우는 면은 있죠. 첫째가 못하면 둘째가 할 거고, 아니면 셋째가 할 거고 한 놈은 걸리겠지, 뭐 이런 마음? 아무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 실패하면 적어도 부모를 원망하진 않겠죠. 제 북한 사투리도 그냥 나온 게 아니라니까요. 제가 좋아서 고2 때부터 애들한테 쉬는 시간마다 솜씨를 보여 주면서 쌓인 실력이라고요(웃음).

진짜 어른이 돼 가는 느낌

 남편은 결혼하고 나서 정말 많이 양보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됐어요. 여자 연예인과 사는 일반 남자들은 희생하는 게 참 많아요. ‘아무개의 남편’으로 산다는 게 자존심 상할 때도 있고 스트레스가 많거든요. 네 아이의 아빠로 살다 보면 자기 취미도 많이 버려야 하고요. 가끔 남편이 밤에 혼자 밥을 차려 먹고 불만을 내색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욱하다가도 ‘나 말고 다른 여자를 만났더라면 평범한 가장으로서 여유를 누리고 살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어서 미안해요. 우리 부부는 자잘하게 삐치긴 해도 크게 싸운 적이 없어요. 서로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웬만한 건 다 이해가 되거든요. 내가 이 한마디만 하면 크게 싸우는 건데 그 한마디를 서로 참는 거죠.

요즘은 주말 저녁에 일이 없을 때면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둘이 영화를 보러 가요. 애들은 다 잘 시간이고 제2의 신혼생활을 즐기는 거죠. 아 참, 팁 하나. 꼭 신혼이 아니더라도 부부 간에는 스킨십이 많이 필요해요. 그런데 여자들이 편한 트레이닝 바지 같은 걸 많이 입고 자요, 그러면 어떻게 스킨십이 편안하게 이뤄지나요. 치마를 입고 자야 합니다. 아침에 잠옷 치마가 말려 올라가 목 졸려 죽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치마! 어릴 때 전 냉정하고 차가운 아이였어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다 보니 스스로 모든 걸 챙겨야 했거든요. 아파도 내가 약국에 가고, 그 약을 먹기 위해 밥을 지어 먹었고. 그래서 남들을 배려하고 챙겨주는 게 부족했죠. 하지만 엄마가 돼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니 변해가는 걸 느껴요. TV에서 아이가 나쁜 일을 당했다는 뉴스를 봤을 때 미혼 시절엔 ‘저런 나쁜 놈이 있나’ 하고 말았어요.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선 정말 분노가 치밀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 사회를 밝은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내 자식만 돌볼 게 아니라 사회를 돌봐야 한다, 그러려면 기부도 하고 봉사도 해야 한단 생각이 들어요. 진짜 어른이 돼 가는 느낌이랄까요.

아직 춤추는 게 재밌어요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감이나 안정감이 어떤 건지 알려주고 함께 나누고 싶어요. 요즘엔 아이에게 너무 많은 돈을 써서 가난해져 버리는 ‘베이비 푸어’란 말이 있잖아요. 몇백만원짜리 유모차, 몇십만원짜리 옷. 시쳇말로 ‘아이를 가오로 키우는’ 이런 현실은 아니다 싶어요. 그래서 직접 출산·유아용품 브랜드(토드비·TODBI)를 만들었어요. 저 스스로도 믿을 수 있으면서 저렴한 유아용품들이 너무 필요했거든요. 아직은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해요. 개그도 마찬가지예요. 얼마 전 ‘스타킹’에서 사투리 코너가 있어서 출연자들과 머리에 꽃 꽂고 연변 사투리 했는데 다들 빵빵 터지던걸요? 평상시에 출연하는 TV 프로 코너에서 매 순간 열심히 하고, 특집프로 땐 김지선 아직 살아있다고 춤도 춰주고, 그런 게 제 사명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요, 아직도 춤추는 게 정말 정말 재밌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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