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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 일에서 찾아낸 삶의 풍요와 자유

중앙일보

입력

'옹기'는 그 발음에서 뭔가 고집스러운 무엇이 있을 듯한 느낌을 줍니다. 거기에 '우리 시대의 마지막 옹기장이'라 하면, 대단히 고집스러우면서도 그 삶에 우리같은 범인들이 알기 힘든 풍요로움이 담겨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흙으로 빚는 자유'(사계절 펴냄)을 써낸 이현배 님이 바로 그 '우리 시대의 마지막 옹기장이'입니다. 옹기장이로서의 삶과 옹기에 관한 생각들을 글로 정리한 이 책은 바로 그의 풍요로운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책입니다.

지은이는 62년 전북 장수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가난한 살림에 먹을 것이 없으면 흙담을 뜯어먹으며, 허기를 달랬다고 합니다. 그 어린 시절부터 그는 흙을 참 좋아했고, 마침내 흙과 함께 인생을 보내고 있게 됐습니다.

사춘기 시절 그는 도둑질을 하다 잡히기도 하는 문제아였어요.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의 한 호텔에서 초콜릿 요리사 일을 했습니다. 그때 전남 지역을 여행하던 중 징광 옹기를 만나게 됐고, 여기에서부터 그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옹기의 아름다움에 취한 그는 징광옹기점 박나섭 옹으로부터 옹기를 배운 뒤 전북 진안군 백운면의 솥내 마을에 자리잡게 된 겁니다.

그가 옹기를 배우기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옹기장이'로 불려집니다. 옹기를 굽는 사람이 아주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발물레로 그릇을 빚고, 잿물 유약을 입히고, 옹기굴에서 가스불이 아닌 장작불로 옹기를 구워내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옹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지은이가 유일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지은이는 '옹기 일을 하면서 한숨 돌리는 얘기로 <문화저널>에 썼던 글들을 모아 감히 책으로 묶어'냈다고 합니다. '우리 사는 삶에서 숨은 그림 찾기처럼 옹기와 삶의 재미'를 이 책 안에 담고자 했다고 머리말에서 밝힙니다.

옹기를 만들어내는 한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이 책에서 지은이는 옹기 일은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노동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굳이 과장하지도, 그렇다고 폄하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장인다운 이야기입니다.

지은이는 옹기 속에서 자신은 삶의 평화와 풍요로움을 얻는다고 합니다. 밤새 구워낸 옹기를 다 깨뜨려 버린 뒤, 지은이는 이야기합니다.

"시간이 지나 깨진 그릇들을 살피다가 혹시라도 안 깨진 게 눈에 띄면 고맙고 기쁘다. 나도 역시 인간인 모양이다. 그렇게 여러사람 마음 아프게 하니 나는 나쁜 인간이다. 어서 온전한 옹구쟁이가 되어 그 안에서 이루어진 물건은 어쨌거나 그 자체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이 옹구쟁이도 이 자체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았으면 좋겠다."(이 책 57쪽에서)

그는 또 요즘 세상의 모든 일을 돈벌이라는 잣대로 가늠하는 게 옳지 않다면서 "나같은 경우 일 자체가 재미있으니 돈벌이가 적은 게 별로 억울하거나 아쉬운 일이 아니다. 돈이 더 벌리면 덤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일이 더 재미나다"(이 책 85쪽에서)고 합니다. 그저 옹기 만드는 일에 지고의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장인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일에 얽매이는 것은 한사코 거부합니다. "사랑을 하고 싶다. …… 이 사람도 옹기 일을 붙들 수도 놓을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갖고 싶다. 좋은 일로 옹기 일이어야지 이게 무슨 행세가 되고, 방편이 되는 그런 불행한 옹기장이가 되고 싶지 않다."(이 책 191쪽에서)

글쓰기와는 무관한 듯한 옹기장이의 글이지만, 그의 옹기에 대한 고집 만큼이나 깐깐하고, 그의 옹기만큼 아름답고 풍요로운 그런 글들입니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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