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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증권사는 '조용한 구조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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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구조조정은 요란하지만 증권업계는 다르다. 다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를 조용히 실천에 옮길 뿐이다."

동양증권 관계자의 말이다. 금융권 전체가 구조조정 바람에 휩싸여 있지만 추진방식은 이처럼 다르다.

대략 자발적인 구조조정과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에는 증권과 종금이, 후자에는 은행이 꼽힌다.

최근 증권업계에 일고 있는 구조조정은 합병이나 외자유치.사옥매각.인력 감축.점포 통폐합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증권사들도 노조가 있지만 은행권처럼 발목을 잡는 경우는 많지 않다.

◇ 사옥매각도 불사〓동양증권은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본사 사옥을 미국계 투자회사인 론스타에 6백억원에 매각하기로 계약을 했다.

기존 사옥을 팔고 이 건물에 세들어 살기로 한 것이다. 증시 침체로 수수료 수입이 줄어들어 재무구조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사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LG투자증권도 20년 이상 정들었던 여의도 사옥을 증권예탁원에 매각하기 위해 최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LG증권은 내년 중 여의도 LG트윈빌딩 내 7~8개층을 세 내 이사할 계획이다.

점포의 군살빼기도 한창이다. 삼성증권은 지난 1일 삼성투신증권과 합병하면서 투신증권이 보유하고 있던 지점 46개 중 절반을 정리했다. 삼성증권 점포 중에서도 4곳을 폐쇄했다.

현대증권도 최근 강남지역 영업총괄본부격인 강남금융센터를 폐쇄하고 그 기능을 인근에 있는 개포지점에 넘겼다.

임대료 부담이 만만치 않은데다 증시 침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영업조직의 재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규모 증권사들은 증시 침체의 고통을 더욱 심하게 느끼고 있다. 사이버거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비용은 대형사 못지 않게 드는 반면 시장은 대형사 위주로 재편되고 있어 그야말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한화.신흥증권 등은 본사 관리부서의 인원을 영업지점으로 전진 배치하는 등 인력 재배치를 추진하고 있다.

신흥증권 김상엽 기획조정실장은 "증권사는 기본적으로 시황에 따라 수익이 좌우되기 때문에 침체기에는 본사 조직 슬림화와 점포 통폐합 등에 나설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외자를 끌어들여 어려움을 이겨나가려는 증권사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제일투신증권이 미국 프루덴셜사로부터 외자유치를 추진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대우.한국투신.대한투신증권 등도 유사한 작업을 벌이고 있다.

◇ 직원들 반발은 적어〓증권사 직원들은 회사측의 이같은 구조조정 노력을 대체로 수용하는 분위기다.

증권업이 다른 업종에 비해 인력 유출입이 활발한데다 성과가 있으면 큰 돈을 벌 수 있는 반면 침체기에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산돼 있기 때문이다.

D증권 S지점 金모과장의 경우 한달에 집에 가져가는 돈이 1백만원 안팎에 불과하다.

이는 본사에 있는 3년차된 고졸 여사원의 월급(약 1백50만원)보다 적은 것이다.

그는 "영업실적이 적은 만큼 월급이 적은 것은 감수해야 하지 않겠느냐" 면서 "지난달 말 지점에 근무하던 투자상담사 다섯명 중 두명이 수입감소를 견디지 못하고 자진 퇴사했다" 고 말했다.

증권업계의 이같은 분위기는 합병을 하더라도 인력감축을 최소화 하겠다는 정부와 경영진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파업으로 맞서고 있는 주택.국민은행 노조 등 금융노조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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