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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축구 한 번 뛰었는데 인터넷에 ‘승부조작한 놈이 … ’ 살인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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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어경준(왼쪽)은 매주 신림동 쪽방촌 청솔쉼터를 찾아 아이들에게 체육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 청솔쉼터]

“아직도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다. 그때 제대로 뿌리치지 못한 게 실수다. 누굴 탓하겠는가. 모두 내 잘못이다.”

 어경준(25)은 대한축구협회 해외유학 프로그램 1기 출신으로 2002년부터 6년 동안 프랑스 메츠에서 뛰었다. 한국 17세·20세 이하 대표팀에서도 활약해 기대주로 손꼽혔다. 그러나 한순간의 실수로 범죄자 낙인이 찍혔다. 프로축구 대전에서 뛰던 2010년 9월 4일 전남과의 경기 3시간 전. 팀 선배가 “대충 뛰어라. 선발 출전할 선수들과 경기에서 지기로 합의했다. 네가 아니더라도 대전은 지게 돼 있다”며 700만원을 건넨 걸 뿌리치지 못했다.

 어경준은 지난달 26일 경기도 파주의 한 식당에서 본지와 단독으로 만났다. 승부조작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지 약 11개월 만이다.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을 돕고 있었다. 그는 “운동을 거의 못해 6㎏ 정도 쪘다”며 씁쓸해했다. “정말 어리석었다. 명백한 내 잘못이다. 누구를 탓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어경준은 지난해 프로축구연맹에 승부조작 사실을 자진 신고했다. 법정에서는 벌금 500만원에 추징금 700만원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프로축구연맹은 영구제명을 했다. 그러나 어경준이 자진 신고한 점을 헤아려 보호관찰기간 3년을 뒀다. 3년 후 선수 복귀 여부를 심사를 통해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어경준은 방황했다. 부모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어 사건 직후 2개월간 집을 나와 떠돌아다녔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봤지만 중학교 중퇴라 이력서도 써보지 못했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최저학력이 고졸이더라. 내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창살 없는 감옥 생활과 같았다”고 떠올렸다. 이어 “친구 부탁으로 지역의 작은 축구대회에 한 번 나간 적이 있는데 다음 날 인터넷에 ‘승부 조작한 놈이 축구를 하고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죽일 놈’이라는 욕설이 가득했다. 살인자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고 덧붙였다.

 어경준은 지난해 10월 충북 음성군에 있는 장애인시설 ‘꽃동네’로 아무도 모르게 봉사활동을 갔다.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필요해서다. 그는 “힘들게 지내는 장애인들을 보고 많은 걸 깨달았다.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불만만 가득했던 내가 한심스럽고 부끄러웠다”며 고개를 숙였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신림동 쪽방촌에 위치한 한 쉼터에서 아이들에게 체육활동을 가르친다. 또 매주 월요일마다 빵을 100개씩 기증한다. 오해를 받기 싫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인터뷰 마지막에 ‘축구를 하고 싶지 않나’라고 물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축구를 하기 싫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반성과 성찰이 우선이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다 보면 내 진심이 전달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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