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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 앓는 아이들이 제주에서 웃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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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햇살나눔캠프’에 참가한 희귀병 어린이와 가족, 자원봉사자들이 27일 제주도 어승생오름을 오르고 있다. [사진 에쓰오일]

지난 27일 오전 제주도 한라산 자락에 위치한 해발 1169m의 어승생오름 정상. 전날 비가 내린 덕분에 유난히 파랗게 갠 하늘에 저마다의 마음을 적은 노란 풍선 70여 개가 날아올랐다. ‘내 새끼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엄마, 아빠 사랑해요. 건강하게 자랄게요’. 풍선은 이 간절한 바람 덕인지 바람을 타고 한라산 꼭대기를 향해 두둥실 날아갔다. 이날 행사는 한국사회복지협의회(회장 차흥봉)가 26~28일 담도폐쇄증 등 희귀난치병을 앓는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해 제주도에서 주최한 ‘햇살나눔캠프’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희망풍선 날리기였다. 중앙일보와 에쓰오일이 후원한 이번 캠프엔 2~10세의 어린 환자 15명과 가족·자원봉사자 등 모두 73명이 참가했다.

 이날 등산로 입구에서 오름 정상까지는 0.9㎞. 건강한 초등학생이라면 30분이면 올라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이들에겐 어느 산보다 높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숨을 헉헉거리면서도 중간에 포기한 이는 없었다.

 풍선들 사이엔 조민건(6)군의 풍선도 있었다. 이번 여행이 조군 가족에겐 첫 가족여행이었다. 그는 2006년 태어나자마자 담도폐쇄증 진단을 받았다. 생후 27일 만에 새로운 담도를 뚫는 ‘카사이 수술’을 했지만 실패했다. 간이 부어올랐고 배는 복수로 가득 찼다. 결국 생후 9개월 만에 엄마 임미옥(36)씨의 간을 이식받았다. 4000만원이나 되는 수술비는 친척들 도움과 빚으로 마련했다. 임씨는 “쉴 새 없이 들어가는 아이 치료비를 대느라 기초생활수급자가 됐지만 그래도 건강해진 민건이를 보면 맘이 한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은 민건이처럼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냈다. 가족들도 병간호와 생활고 탓에 여행을 꿈꾸기 어려웠다.

 “해녀는 뭐하는 사람이에요.” “제주도 돌은 왜 까맣고 구멍이 뽕뽕 뚫려 있어요.”

 역시 담도폐쇄증으로 간이식을 받아 5세 때까지 병원에서 지냈던 조수아(7)양은 캠프 첫날인 26일 우도로 향하는 배 안에서 질문을 쏟아냈다. 평소 체력이 약해 오후 9시면 잠자리에 든다는 서수민(초등1·담도폐쇄증)양도 새로 사귄 친구들과 노느라 오후 10시가 돼도 잠자리에 들 줄 몰랐다.

  이종화(33)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주임은 “환자와 가족들에겐 치료비 지원만큼이나 ‘완치될 수 있다’는 확신과 위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희귀난치병 어린이 후원 문의는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새생명지원센터(02-2077-3961~2).

제주=이한길 기자

◆담도폐쇄증=담즙을 간에서 십이지장으로 배출하는 담도가 막히는 질환. 신생아 1만 명 중 1명꼴로 발병하며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소장으로 담도를 만들어주는 ‘카사이 수술’이 있지만 성공률(30%)이 낮다. 실패하면 간이식을 받아야 한다. 국내 환자는 1000여 명가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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