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총선 뒤 되레 오만해진 정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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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은 5월 15일 새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연다. 그러나 26일 현재 출마선언은 0이다. 전대까지 남은 시간은 20일뿐. 25일엔 오히려 불출마선언이 이어졌다. 박근혜계 핵심인 서병수·최경환·유승민 의원 등이다. 경선을 앞두고 출마선언은 없고, 불출마선언만 있다. 4·11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현상이다.

 새누리당은 ‘오너십’이 분명하다. ‘최대주주 박근혜’의 의석 지분은 80%가 넘는다. 일단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의중을 파악하느라 모두들 납작 엎드려 있는 인상이다. 그러나 물밑에선 당권과 원내권력을 놓고 측근들이 파워게임에 골몰하고 있다. ‘대표 황우여, 원내대표 서병수, 이주영 정책위의장’ 등의 리스트까지 나돌 정도다. 대권이라도 잡은 듯한 모습이다.

 새누리당은 김형태 당선인의 제수 성추행 의혹, 문대성 당선인의 논문표절 의혹이 불거졌을 땐 이들을 감싸듯 했다. 총선 때는 ‘국민만 바라보겠다’며 몸을 낮췄다가 총선이 끝난 지 보름 만에 총선 전 모습으로 원위치했다. 이런 오만에 급기야 당의 오너가 분노를 폭발시켰다. “이렇게 하다간 새누리당은 또 한번 국민심판을 받는다. 이젠 용서를 빌 데도 없다”고까지 했다.

 민주통합당에선 총선 패배에 대한 반성과정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선거판이 벌어졌다. 이낙연·전병헌·유인태·박기춘 의원 등 ‘소액주주’들의 원내대표 출마 선언이 잇따랐다. 이들이 26일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았다. 당의 ‘대주주’ 격인 노무현계의 문재인·이해찬 상임고문과 호남의 박지원 최고위원이 손을 잡고, ‘이해찬 당 대표-박지원 원내대표’로 역할을 분담키로 했다. 영남의 문재인 고문과 충청의 이해찬 고문, 호남의 박지원 최고위원이 손을 잡으면 ‘민주당판 3당 합당’이 될 수도 있다. 당내 경쟁이 무의미해지는 과점(寡占)체제가 구축될지 모른다.

 당내 계파가 전략적으로 연합할 순 있다. 문제는 과정이다. 계파 간 공개토론을 거쳐 합의를 도출하는 대신 대주주 세 명의 비공개 연쇄회동에서 전격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대선을 앞두고 지분 확보의 필요성이 절박한 수준이었던 것 같다. ‘이회창-이인제’의 어정쩡한 동거체제인 자유선진당, 주류가 지분을 독식하려다 비례대표 순위조작 의혹에 휩싸인 통합진보당 모두 이런 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박지원 최고위원이 밀어주기로 해 출마선언을 했다 졸지에 눈치 없는 사람이 된 박기춘 의원은 “정치가 이렇게 비정할 수가 있나. 정말 참…. 허허 참…”이라며 헛웃음만 삼켰다.

  소액주주의 반발은 계파의 힘으로 눌러도 된다고 본 듯하다. 사전각본에 따른 경선으로 ‘감동의 드라마’까지 연출할 수 있다고 본 걸까. 소액주주들은 ‘담합’이라고 아우성인데, 대주주들은 ‘단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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