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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안철수가 장고하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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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논설실장

프랑스 대선이 혼전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22일 1차 투표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29.3%)에게 3.3%포인트 차로 졌다. 우리 선거제도라면 이미 정권이 바뀐 셈이다. 사르코지에게는 다음 달 6일 실시되는 결선투표라는 기회가 한 번 더 있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리 르펜 후보(18.2%)와 좌파 연합의 장뤼크 멜랑숑 후보(11.1%)가 각각 3, 4위를 차지했다. 좌우로 나눠 표를 계산하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한 게 정치의 세계다. 구체적인 정책과 후보에 대한 신뢰, 정파 간의 전략과 계산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야권 후보 단일화가 대권 승리의 필수과제로 여겨진다. 1987년 김영삼·김대중 양김씨가 남긴 교훈 덕분이다. 이후 수많은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는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단일화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당선만을 위한 것이라면 모를까, 정당은 그 이상의 정치적 목표를 명분으로 가져야 한다.

 4·11 총선 이후 민주통합당은 안철수 서울대 교수를 어떻게든 영입해야 할 처지가 됐다. 결선투표가 없으니 단일화가 어렵다면 최소한 주저앉히기라도 해야 승산이 있다. 안 교수는 “사회에 긍정적인 도구로만 쓰일 수 있으면 설령 그게 정치라도 감당할 수 있다”고 운을 뗐지만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빨라도 1학기는 끝나야 할 것 같다.

 어쩌면 민주당 후보가 정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공학적으로만 따지자면 그런 수순이 백번 유리하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한참 앞선 입장에서 기반도 없는 당 경선에 나서는 모험을 자청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막판 단일화로 가려면 안 교수도 독자적인 진영을 꾸려야 한다. 그런데 한번 선거조직이 만들어지면 나름의 조직논리가 생겨 부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총선과 달리 대선은 제로섬 게임이다. 대통령 하겠다고 자기 생각은 버리고 민주당의 조직과 정책에 얹혀 가는 것도 우스운 꼴이다.

 단일화 방식도 문제다. 프랑스라면 각자 출마해 결선투표로 가면 되지만 한국에서는 다르다. 현실적으로는 여론조사로 우열을 가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론조사에는 많은 허점이 드러났다. 방송인 김흥국씨는 『김흥국의 우끼는 어록』에서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때도 조작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총선 때 관악을에서 벌어진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4·11 총선 결과 드러났듯 여론조사 자체의 신뢰도 떨어졌다.

 ‘공동의 목표가 뭐냐’도 문제다. 정치적 지향점이 다른 후보 간의 연대는 오로지 집권만을 위한 야합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3당 합당이나 김대중-김종필 연합 같은 경우다. 나라를 어떻게 끌고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리를 나눠먹는 합작투자였던 셈이다.

 양김씨에게는 군정 종식과 민주화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다. 이번엔 반(反)MB가 공동 목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 20대 청년들이 야당을 향해 “우리는 미래를 기대하는데 왜 과거만 이야기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던 점을 되새겨야 한다. 군사정부는 그것을 끝내는 것만으로 충분한 희망을 줬지만 이제 다르다.

 정책을 조율할 시간도 없다. 안 교수는 안보 문제에 보수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민주당의 연대세력인 통합진보당은 어떻게 할 건가. 야권 연대의 멘토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천안함 문제마저 ‘MB 정부에 책임을 물으라’고 요구한다. 안 교수가 그런 배에 같이 탈 수 있을지 미지수다.

 안 교수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건 검증 회피로 보이는 점이다. 검증은 유권자에 대한 의무다. 안 교수는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인지도가 높은 것과 대통령의 자질 검증은 다르다. 도덕성만으로 나라를 이끌어갈 최고지도자의 자격을 판단하기엔 미흡하다.

 안 교수의 정치적 입장은 알려진 게 거의 없다. 국정 구상은 혼자 알아서 할 테니 나만 믿고 투표하라는 건 오만이다. 적어도 대통령이 되려면 자신의 국정 운영 구상을 충분히 공론화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더구나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대통령감이냐 아니냐’는 본인보다 주변 사람을 봐야 판단할 수 있다. 측근들과의 관계는 심한 경우 대통령이 간판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국민에게 자신의 비전과 정책 구상을 알리고, 꿈과 희망을 줄 자신이 있어야 정치 지도자다. 막연한 인기만 보고, 알려진 흠집이 없으니, ‘닥치고 투표’하라고 할 순 없다. 국민과 소통하는 시간이 길수록, 자신이 드러날수록 지지도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부정하는 것이다. 대통령 예비후보 등록은 정치권에 몸담지 않은 후보에게 국민과 소통할 기회를 주기 위한 제도다. 안 교수의 장고(長考)는 빨리 끝날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