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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BEST] 4060 다시 세상으로 ⑦ 보나젬 대표 박유경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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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결혼하느라 석사논문 제출을 앞두고 공부를 접었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교수의 꿈도 점점 멀어져 갔다. 결혼 18년 차, 마흔둘의 나이에 그녀가 새롭게 선택한 길은 보석 디자이너. 보석감정사 자격증을 따고, 디자인 공모전에서 상을 받고, 많은 사람의 경험담을 들으며 3년 동안 창업을 준비했다. 장롱 속에 잠자는 결혼 예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보석 리폼’ 분야에 도전한 박유경(51) 보나젬 대표.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기성품 보석 시장에서 나만의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그녀를 만났다.

글=문은영 객원기자 bweym2@naver.com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보나젬 박유경 대표가 서울 인의동 사무실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언제 결혼했나. “1986년, 중매로 남편을 만나 3개월 만에 결혼했다. 결혼 전 대학원에서 교육사를 전공했지만 어른들께서 좋은 사람이 있을 때 빨리 결혼하라고 하셨다. 88년, 90년 두 아들을 낳고 키우느라 공부는 뒷전으로 밀렸다. 아이들 키울 때 제일 신경을 많이 쓴 건 먹이는 일이었다. 가능하면 내가 직접 만든 음식을 먹이고 싶었다. 아이들이 대학교에 들어간 후 밖에서 사먹는 음식이 부실한 것 같아 요즘은 두 아이들 도시락을 매일 직접 싸준다.”

-공부를 계속하지 않은 이유는. “원래는 석사학위를 받고 계속 공부해서 교수가 되고 싶었다. 아이들이 유치원 들어갈 때쯤 공부를 다시 하려 했지만, 남편이 대기업 계열 IT업체에서 근무하다 보니 매일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주말에도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라도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할 것 같아서 포기했다.”

-보석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책을 보다 보석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손재주 좋다는 말도 많이 들은 터라 깊이 공부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작은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간 뒤 결혼 18년 만에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2011년 박유경 대표가 특허 출원한 반지 디자인 등록증.

-언제부터 보석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나. “2003년 학원을 찾아갔다. 6개월 과정 공부를 마친 뒤 유럽보석학회가 인정하는 국제보석감정사(EGL) 자격증을 취득했다. 보석 디자이너는 특별한 자격증이 필요한 직업은 아니지만, 디자인에 활용되는 30여 종의 보석을 감정하고 특질을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에 감정사 자격증을 딴 것이다. 2004년 학원에서 보석 디자인 과정을 이수했고, 2005년에는 경기대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에서 보석 마케팅과 디자인 경영 과정을 수료했다.”

-보석 디자인을 하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나. “보석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스케치를 배운다. 반지 그리기부터 시작하는데 삼각 투시도 그리는 법과 채색을 배운 뒤 본인이 구상한 것을 직접 그리는 응용과정에 들어간다. 보석 디자인 공부는 요리 공부와 같다. 학원에서 배운 조리법대로 꾸준히 혼자 연습해야 실력이 쌓이는 것처럼 보석 디자인도 직접 그려보고 연습해야 실력이 는다. 그래서 식구들이 자는 시간에 스케치 연습을 했다. 교재 외에 외국 서적도 많이 봤다. 학원에서 배운 게 3분의 1, 나 혼자 공부한 게 3분의 2 정도 된다.”

-창업을 준비하면서 어떤 점을 가장 신경 많이 썼나. “준비가 철저할수록 실패 확률이 낮아진다고 보고, 3년의 준비기간을 설정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선생님들께 성공한 매장을 소개받아 찾아다녔다. 여러 차례 고비를 넘기고 성공하신 분들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방향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 2005년 국제 귀금속 공예대전 실물부에 입선하면서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무렵 지인의 오래된 결혼 예물을 리폼해줄 기회가 생겼는데 “사람들 반응이 좋다”며 퍽 만족스러워했다. 뿌듯했다. 준비가 됐다고 생각해서 2005년 11월 보나젬을 오픈했다.”

고향인 부산의 바다에서 영감을 얻어 진주와 멜리 다이아몬드로 디자인한 브로치.

-창업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보석 디자이너라고 하면 화려한 매장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캐스팅’ 제품을 손님이 고르는 방식은 요즘 고객 수준을 따라잡기 어렵다. 나는 판매자가 아니라 디자이너이니까, 손님과 상의하고 디자인 작업을 하는 공간이면 족하다. 또 하나, 나는 주부가 자기 일을 하기 위해 가계에 큰 부담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서울 예장동에서 오래된 상가 사무실을 보증금 200만원에 얻었다. 찾아오기 힘든 후미진 곳이라 예약시간에 맞춰 한길로 나가 손님을 모셔오곤 했다. 홈페이지를 보고, 혹은 입소문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2009년 지금 자리인 종로구 인의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소자본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오히려 탄탄하게 일을 해올 수 있었다.”

-보석 디자인 중 ‘리폼’을 전문으로 하게 된 이유는. “보석을 장롱 속에 모셔두거나 특별한 날에만 착용하는 고가의 사치품이 아니라 일상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아이템으로 만들고 싶었다. ‘리폼’은 보석의 특성과 착용하는 사람의 나이와 손 모양, 이미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등을 고려해 디자인하는 작업이다. 오래된 결혼 예물이나 집안에서 내려오는 보석을 트렌드와 개성에 맞게 리폼하는 일이 외국에선 흔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일반화되지 않았다. 리폼이라고 하면 낮추어보는 사람도 있는데, 훨씬 신경 써서 챙길 부분이 많아 까다로운 작업이다.”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정성을 많이 들였다. “화이트 골드를 백금으로, 핵진주를 진주로 잘못 알고 있는 분이 많다. 심지어 납으로 만든 액세서리를 리폼해 달라고 가져온 분도 있었다. 가능하면 리폼하지만, 소재의 특징에 따라 작업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보석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면 구입이나 리폼을 의뢰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공을 들인다. 홍보를 위해서라기보다 어디서든 보석을 제대로 구입하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다이아몬드 반지 디자인 스케치.

-디자인 특허도 2건이나 등록했다.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제품은 외국 디자인을 본뜬 경우가 많아 방어적 차원에서 디자인 특허를 냈다. 직접 서류를 만들다 보니 등록하는 데 1년 반이나 걸려 우선 2개만 등록했다. 내가 직접 디자인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목적도 있다. 간혹 외국 명품 브랜드 디자인을 가져와 똑같이 해달라고 주문하는 경우가 있다. 도의적 문제도 있지만 디자이너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디자인 복제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원칙이다. 대신 브랜드의 명성을 좇지 말고 나만의 디자인을 해서 고유한 반지를 끼라고 권한다.”

박 대표 책상 옆 벽면에 붙어 있는 디자인 작업서들. 스케치와 더불어 꼼꼼한 작업 지시사항과 고객의 요구사항을 적어뒀다.

-가장 힘든 때는 언제인가. “중량을 속이는 건 아닌지, 보석을 바꿔치기하지 않는지 의심하는 고객이 가끔 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진위를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서 서로 나누어 갖는 등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둔다. 최근 다이아몬드 반지를 리폼하면서 잘라낸 백금 조각까지 다 줬는데 보석이 바뀐 것 같다는 고객이 있었다. 반지 틀에 각인된 고유번호를 같이 확인한 뒤 작업을 시작했으니 다시 확인해 보라고 해도 ‘한국 사람은 정직하지 못하다, 믿을 수 없다’고 우겼다. 같이 보석감정소에 가서 현미경으로 확인해 주었더니 뒤늦게 미안하다고 하더라. 한동안 충격을 받아 일을 하지 못했다. 또 아직 디자인 공임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작업량, 강도에 비해 보수가 박한데, 가격을 깎아달라는 요구도 많다.”

-수입은 얼마나 되나. “나는 보나젬이 보석 리폼 분야에 새롭게 도전해 블루오션을 개척했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 매출만으로는 건설업이나 쇼핑몰 운영 등과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리폼할 보석의 상태와 디자인에 따라 재료비가 거의 들지 않을 수도 있고, 한 명의 고객이 많은 물량을 주문할 수도 있어 월 매출은 들쑥날쑥한 편이다. 연매출은 대략 7000만~1억원 선이다.”

4060 다시 세상으로 육아와 내조, 그리고 살림에 ‘올인’하며 살아온 주부들. 마흔이 넘어서면서 삶의 고민이 커진다. 남편도, 자식도 옆에 있지만 내 존재를 대신 증명해 주진 않는다. 그렇다고 쇼핑으로, 모임으로 시간을 보내버리기엔 삶이 너무 길다. 그 고민에 대한 답을 늦깎이로 일을 찾아 ‘성공한 프로’로 자리잡은 여성들에게 들어본다. 새로운 길을 열망하는 ‘4060’에게 롤 모델이 될 여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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