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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의 저주 … 남의 돈 굴리다 몰락한 ‘미다스의 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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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귀재’는 결국 PF의 함정에 빠져 몰락했다. 서울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 개발 사업을 주도한 파이시티 이정배 전 대표 얘기다. 그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부동산을 개발하는 PF업계에선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다. 한 시중은행의 PF 담당자는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해 주요 은행이 앞다퉈 투자하겠다고 나서곤 했다”고 말했다. 그가 한순간에 추락한 배경은 무엇일까.

 이 전 대표는 1998년 대우건설 출신 선후배와 넥서스건설을 창업해 개발사업을 시작한다. 2000년 초반까지 20~30개 아파트 단지 개발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명성을 얻는다.

복합유통센터 파이시티가 들어설 예정이던 서울 양재동 옛 화물터미널의 한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유리문에는 건물 출입을 금지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도훈 기자]<사진크게보기>

 그가 쓴 자금동원 방식은 모두 PF였다. 프로젝트의 수익성을 보고 투자자를 모으는 금융기법인 PF는 당시에만 해도 국내에선 생소했다. 그러다 보니 개발업자의 낮은 신용을 보강하기 위해 대형 건설사가 지급 보증 등을 약속하면 은행권이 돈을 대주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당시는 부동산 시장 활황기여서 은행에서 좋은 프로젝트와 건설사 보증만 있으면 서로 돈을 빌려주려고 나섰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의 앞길엔 거칠 것이 없을 듯했다. 2004년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를 매입하면서 발을 들인 파이시티 프로젝트는 누가 봐도 유망했다. 이 전 대표는 저축은행 등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경매에 나온 부지를 매입했다. 그는 2년 정도 후인 2007년이면 모든 인허가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했다. 건설사(대우자동차판매·성우종합건설)의 지급 보증으로 2007년엔 우리은행과 농협 등으로부터 8620억원의 대출을 받는 데 성공한다. PF는 대출을 받는 순간부터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어떻게든 인허가를 빨리 받아 착공을 하고 분양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다. 한 개발업체 대표는 “어떻게든 좋은 조건으로 인허가를 빨리 받아야 수익이 난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2009년 11월까지 인허가가 나지 않았다. 토지 용도 변경 등이 지연되면서 인허가에 걸린 시간이 예상보다 2년 이상 길어졌다. 연 17%의 연체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갚아야 할 원리금이 1조원이 넘었다. 그가 220억원대의 불법 로비자금을 뿌린 것도 이즈음이다. 모든 돈을 날리느니 불법이지만 비용이 훨씬 적게 드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 전 대표와 PF를 함께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자가 하루에만 몇 억원씩 쌓이면 누구나 인허가를 앞당겨줄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마련”이라며 “로비자금 몇 십억이 문제가 되겠느냐”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급 보증을 선 시공사 대우차판매와 성우종합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결국 무너졌다. 버팀목이던 시공사 보증이 사라지자 채권단은 파이시티를 대상으로 파산 신청을 한 것이다.

  사업 환경이 나빠지면서 현재 1만여 개 시행사 가운데 사업을 하는 곳은 1900여 개에 불과하다. 피데스개발 김승배 사장은 “파이시티 사업은 PF사업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면서 “PF사업이 부동산 활황기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지금은 재앙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박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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