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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와 광양 가봐라, 공생발전 해답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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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24일 서울 명동 포스트타워에서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중앙일보 주최로 ‘한국 자본주의 생태계의 새로운 모색’ 국정과제 세미나가 열렸다.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 구축을 주제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한국 사회에서 성공을 위한 ‘한줄서기’ 경쟁은 치열하다. 수험생 60만 명 중 0.4%만이 서울대로 간다. 수험생의 9.9%는 서울 소재 대학으로, 19%가 수도권 소재 대학으로 향한다. 한 해 대학(원) 졸업생 56만 명 중 공기업이나 대기업 같은 ‘좋은 일자리’를 얻는 사람은 2만~3만 명에 불과하다. 진학이나 취업에서의 좌절은 인생의 패배감으로 귀결된다. 지난해 9~10월 SBS와 갤럽이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경쟁 관련 국민의식을 설문조사한 결과 44%가 스스로를 패배자로 인식했다. 이런 분위기는 사회통합을 약화시키고 결과적으로 한국 경제의 중장기적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를 구출하기 위한 한국적 해법은 무엇일까. 24일 중앙일보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공동 주최한 ‘한국 자본주의 생태계의 새로운 모색’ 세미나 첫날 새로운 ‘한국적 자본주의’에 대한 구상이 쏟아졌다. 참석자들은 사회적 격차를 줄여나가는 발전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큰 틀에선 MB 정부의 ‘공생발전’ 기조와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분배만 강조하는 식의 공생발전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날 서울 명동 포스트타워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정과제 세미나엔 13개 국책연구기관과 11개 학회 전문가가 참여했다.

 소득분배는 갈수록 악화하고, 경제는 성장하긴 하는데 ‘고용 없는 성장’을 한다. 영세기업과 자영업자가 많다 보니 저숙련 근로자는 일해도 가난한 ‘근로빈곤’에 빠져 있다. 세미나 참석자가 공감한 한국 경제가 당면한 문제점이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박진근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한국 경제는 세계 경제위기 등 외부 요인뿐 아니라 고용 없는 성장, 수출산업에 대한 높은 의존도, 고령화 등 내부적 요인을 동시에 안고 있다”며 “해결방안으로 과거 선진국 추격형 모형이나 영미식의 개방된 시장경제 모형, 최근 유럽식 복지경제 모형을 모색하고 있지만 한국이 당면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연세대 이두원(경제학) 교수도 “한국 경제는 성장과 분배, 복지와 재정, 대기업과 중소기업이라는 대립적 가치의 균형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경제가 왜 이런 어려움에 처했는지에 대한 분석은 엇갈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고영선 연구본부장은 ‘글로벌화’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세계시장에서 중국과의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국내 대기업은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쟁에 노출되지 않은 서비스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은 점점 더 떨어졌다. 이런 차이로 인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 소득분배 양극화가 점점 더 심해진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따라서 해법도 경쟁력과 생산성에서 찾았다. 고 본부장은 “분배 개선을 위해서는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며 “시장친화적 경제체제를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규제 철폐로 진입장벽을 낮춰 경쟁을 촉진하자는 주장이다. 그는 “생산성 높은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비해 고려대 김태일(행정학) 교수는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위주로 사회경제구조가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봤다. 그는 시장을 활성화함으로써 서비스업의 낮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에도 회의적이다. 김 교수는 “양극화와 근로빈곤은 어쩔 수 없는 문제인 만큼 정부가 보완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공생발전을 위해 기업, 특히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가톨릭대 김기찬(경영학) 교수는 “당장 먹음직한 열매를 따먹는 ‘수렵형’이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해 씨앗을 뿌리는 ‘경작형’ 패러다임으로 가야 한다”며 ‘생태계형 발전’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예로 든 건 인천공항공사와 포스코다. 그는 “기업이 들어옴으로써 주민과 중소기업이 행복해진 사례가 영종도와 광양”이라며 “대기업은 플랫폼을 만들면 주민과 주변 중소기업이 함께 발전하는 공생구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산업경제연구센터 소장도 “대기업은 일회성 사회공헌이나 투자가 아닌, 플랫폼 투자처럼 생태계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부 압력에 못 이겨 마지못해 하는 동반성장은 “정권이 바뀌면 이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비즈니스 생태계의 공동자산에 투자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시스코가 운영하는 ‘네트워킹 아카데미’를 예로 들었다. 지역주민에게 네트워크 기술을 교육함으로써 개별 기업이 아닌 생태계의 공동 발전을 꾀한 사례다.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정책 제안도 나왔다. 김영생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대기업이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기보다 괜찮은 중소기업과 분업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이 자체 고용을 늘리는 것보다 협력사의 매출을 늘리는 게 일자리 창출 효과가 훨씬 크다는 뜻이다. 김 연구위원은 이를 촉진하기 위해 기업이 생산한 제품에 ‘고용창출 지표’를 표시하자고도 제안했다. 해당 기업이 고용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소비자에게 알려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자는 주장이다.

한국 자본주의 구출 작전 말말말

“ 가장 중요한 복지정책은 고용확대. 이를 위해선 경제성장이 필요하다.” -이두원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 중소기업 자금 지원은 창업 초기에 집중하고, 일반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 기업엔 재정지원 줄여나가야.”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 연구본부장

“ ‘흥하는 이웃이 있어야 나도 흥한다’는 이념을 제도적으로 구현해야.” -좌승희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

“기업 공시자료에 사회공헌활동 내용 기입할 필요.”

-장석인 산업연구원 산업경제연구센터 소장

“ 거래에서 갑을관계를 활용해 가격에 집착하면 기업 생태계가 단절된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 대기업은 새로운 제품 개발과 신시장 개척에 집중하는 등 경제발전을 선도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김영생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

“ 파트타임 노동자의 다수는 저임금에다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있다.”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FTA 등 시장개방에 따른 지역단위 지원제도를 통해 개방화에 대한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김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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