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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 DN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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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현기
도쿄 총국장

지금 살고 있는 집 주변이 그 악명 높은 만주 관동군 731부대의 지휘소였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손일선 도쿄대 특별연구원에게 귀띔을 받고 지난 주말 탐색에 나섰다. 먼저 집 바로 앞 신주쿠 가와다초의 게케이지(月桂寺).

 경내 안쪽에 이시이 시로 중장의 묘비가 다른 비석들과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시이가 누구인가. 1936년부터 일본이 패망한 45년까지의 10년 동안 만주 하얼빈 등지에서 3000명의 한국·중국·몽골인을 ‘마루타’로 만든 장본인 아니었던가.

 절을 나와 5분 남짓 남쪽으로 걸어간 국립감염증연구소 부지.

 이시이의 ‘731부대 도쿄 연락소’였던 육군 군의학교 방역연구실이 있던 곳이다. 뒤뜰에 ‘정화(靜和)’란 글이 새겨진 사다리꼴 모양의 납골 시설이 보였다. 바로 이곳에서 89년 7월 연구소 건설 중 100여 기의 인골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참 알 수 없는 일이에요.” 이 지역 토박이라는 오쿠데(奧出)는 고개를 갸웃했다. “인골이 발견된 뒤 정부가 무려 22년을 미적거리더라고요. 그러더니 지난해 말이 돼서야 주변지역 일부를 파헤치나 싶더니 지난달 ‘인골은 더 이상 없다’고 결론 내더라고요.”

 731부대의 역사는 장편의 은폐 시리즈다.

 인골이 나타나자 일본 정부는 “의대 실습용”이라고 우겼다. 그러다 “유골은 한국·중국·몽골계이며, 머리에 드릴이나 톱 자국이 있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오자 “전쟁터에서 시신을 갖고 왔을 것”이라고 발뺌했다. 참다 못한 당시 간호사가 2006년 양심선언을 했다. “패전 직후 인간 생체실험 인체표본을 땅속에 매장했다.”

 그럼에도 일 정부는 “어디에 확증이 있느냐”며 731부대의 반인륜적 인체실험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731부대의 인체실험 관련 10만 쪽의 문서는 45년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60년대 초 일본으로 돌아왔다. 세균전의 바이블 같은 자료다. 이 사실은 20여 년이 지난 86년 일본 아닌 미국에서 폭로됐다. 일본 정부의 당시 해명은 거의 코미디다. “조사해 보니 (미국에서) 건너온 건 맞더라. 근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언제 무엇에 써 먹으려 하는지….

 오늘날 일본 정치에서도 731부대의 ‘은폐 DNA’를 본다.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 일 정부는 방사능확산 정보(SPEEDI)를 한 달 넘게 숨겼다. 주민들은 피할 수 있었던 피폭을 당했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사실도 40분 넘게 발표하지 않아 빈축을 샀다.

 일본 정부는 올 들어 ‘유골 귀환 플랜’을 가동 중이다. 태평양전쟁의 격전지 이오지마에서 희생된 일본인 유골을 찾는 작업이다. “마지막 모래 한 알까지 확인하라”는 특별지시까지 내렸다. 2014년 3월까지 섬을 샅샅이 뒤진단다. 국가로서 당연한 일이니 딴죽 걸 생각은 없다. 하지만 모래 한 알은커녕 뻔히 드러난 731부대 유골조차 인정하지 않는 모습과는 너무나도 이중적이라 혼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