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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주의 부족한 은행 경영, 인력 재배치로 뚫는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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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호 23면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Q.조직 운용과 인사의 혁신은 어떻게 합니까? 인력의 재배치는 어떻게 하나요? 오래된 기업에서 나타나는 관료화 현상도 문제인데요. 소통의 혁신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경영 구루와의 대화<13>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②

A.조직 운용과 인사관리 원칙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됩니다. 정(情)과 인화(人和)를 바탕으로 한 동양의 온정주의와 서구의 성과주의죠. 1960년대엔 산업화가 상당히 이루어진 일본의 기업조차 서구식 성과주의를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일본의 많은 기업과 한국의 삼성 등이 인사 등에 성과주의를 받아들여 성공을 거뒀죠.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유럽 기업이 퇴조하고 미국의 잘나가던 기업마저 활력을 잃으면서 성과주의에 대한 반성이 대두했습니다. 성과 지상주의의 폐해가 드러난 거죠. 우리나라도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가 열리면서 삶의 질을 전보다 중시하게 됐는데, 성과주의에 대한 각성도 이런 변화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은행은 지난 30년 동안 사실상 성과주의의 무풍지대나 다름없었습니다. 은행 간, 점포 간 영업실적 경쟁은 있었지만 우물 안 개구리 식 내수 비즈니스 위주로 국제 경쟁에 거의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제 그런 국경이 사라졌습니다. KB국민은행은 HSBC·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과 경쟁해야 합니다. 투자은행(IB) 분야의 경쟁 상대는 골드먼삭스입니다. 금융 개방 시대에 인재를 유치하려면 우리 은행들도 성과주의를 근간으로 한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인재 없이 경쟁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성과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지만 우리 은행만큼은 제대로 해 본 적이 없기에 성과주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KB금융의 성과주의는 ‘능력에 따라 보임하고, 성과에 따라 보상한다’는 말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사리가 분명한 조직으로 바꾸려는 거죠. 이런 조직을 만들기 위해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하고 성과에 대한 평가를 엄정하게 하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KB금융지주는 ‘투입 인건비 대비 총 영업이익 배수(HR ROI)’가 4대 금융지주 가운데 가장 낮습니다. 다시 말해 구성원의 수에 비해 영업이익이 가장 적게 납니다. 1인당 생산성이 가장 낮다는 거죠. 여기에는 그럴 만한 사연도 있습니다. 7년여 전 금융사고가 터진 뒤 금융감독원의 요구로 ‘직무분리(Separation of Duty·SOD)’라는 걸 하느라 우리가 인력을 5000명가량 뽑았습니다. 장부에 기장하는 사람과 돈을 지급하는 사람을 분리하면서 단순 지급업무를 담당할 사람을 충원한 것이죠. 이들은 사실 급여가 적은 편이었는데, 비정규직 차별 철폐 논란 속에서 3년 전에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인건비가 올라간 겁니다. 그 바람에 4년 전까지는 국내 금융계에서 가장 높았던 KB금융의 1인당 생산성이 떨어졌습니다. 이 문제를 푸느라 명예퇴직을 실시해 3년치 급여를 받고 3200여 명이 그만뒀습니다. 그 후 SOD는 내부 불만이 커져 폐지하고 그에 따르는 리스크는 관리를 강화했습니다.

인력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교육·훈련을 강화했습니다. 직무를 바꿔주는 것도 생산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비생산적인 업무 흐름을 개선하려는 것이죠. 대학 캠퍼스에 대학생 전용 점포 ‘락(樂)스타존’을 만든 건 새로운 비즈니스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것 이외에 인력이 남게 되는 현상을 사전에 차단하자는 뜻이었습니다. 락스타존은 신규 채용 인력을 투입한 것이 아니라 기존 인력을 재배치했습니다. 이때의 인건비는 이미 지출된 일종의 매몰원가(sunk cost)인 셈이죠. 젊은 분위기의 점포 락스타 덕에 KB금융은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은행으로 다가갈 겁니다. 이를 위해 인력을 내놓은 부서 입장에서는 당장 고생하겠지만 머지않아 적응할 겁니다. 락스타 근무자들은 넥타이를 매지 않고 청바지 차림으로 일하는데 이것도 자그마한 혁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가을에도 새로운 고객층을 겨냥한 신개념 점포를 출범합니다. 기존 인력을 이런 식으로 재배치할 겁니다.

조직 개편도 많이 했습니다. KB국민카드를 KB국민은행에서 분사시키고 KB투자증권과 KB선물은 합병했습니다. 금융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조처였죠. KB국민카드는 분사 후 독자적 마케팅을 펼친 데다 락스타를 통한 영업이 시너지 효과를 내 체크카드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기업의 관료화도 시급한 혁신 과제입니다. 관료화란 뭘까요. 한마디로 자기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풍조입니다. 극단적인 케이스가 무사안일주의입니다. 가장 큰 병폐는 리스크를 회피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내놓지 않는 겁니다. 관료화한 기업 구성원은 하던 일, 익숙한 일을 반복하려 드는 관성이 강합니다. 이런 조직에서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지요. 구성원의 성과 평가도 쉽지 않습니다. 정보기술(IT) 기업에 관료주의가 상대적으로 발붙이기 어려운 것은 관료주의가 만연했다가는 몇 달 못 가 망하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아등바등 생존해야 하는 신생업체도 관료주의가 생기기 어렵습니다. 국제 경쟁이란 개념이 상대적으로 덜한 정부 부문이나 공직사회도 외국인을 많이 채용하면 관료주의가 줄지 않을까요.

전체 임직원 대상의 혁신 교육이 필요합니다. 혁신 경영을 주도할 하부조직도 있어야 돼요. 그러나 혁신팀이라는 전담 조직이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혁신을 위해 회장 취임 후 구성원과의 소통을 강화했습니다. ‘신임 회장에 바란다’는 제목으로 임직원 제안이나 의견을 받았는데 2000건 넘는 편지가 왔어요. 좋은 내용은 경영에 반영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봄엔 임직원들과 프로야구 경기를 단체 관람하면서 유대를 다졌습니다.

소통 방식도 바뀌고 있습니다. 요즘 각광 받는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즉각적이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 많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소통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죠. 혁신 경영에도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대중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SNS는 사내 방송이라든가 인트라넷, 사내·사외보 등과도 다릅니다. 하지만 CEO가 SNS에 너무 묶여 있으면 큰 생각을 못할 것 같아요. 늘 꿈을 꾸고 비전을 가다듬어야 하는데 SNS에 빠질 우려가 있죠. 이렇다 보니 어떤 CEO는 자신의 SNS를 전담하는 인력을 두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 단계 거르게 되면 소통의 기본인 진정성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도 돼요. 진정성이 적으면 감동도 적지 않겠어요. 이제는 SNS가 CEO의 역할이나 업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 볼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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