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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 맴돌기 3000년 … 아인슈타인 만나 4차원으로 승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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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호 28면

옛날 희랍시대 사람들은 퍽 현명했던 것 같다. 그때 석학들은 과학과 예술을 함께 연구했다. 요즈음 우리 교육과학기술부도 이들처럼 과학·공학·기술·예술 및 수학을 하나의 유기체로 교육하는 스팀(STEAM: Science·Technology· Engineering· Arts· Mathematics) 교육에 정열을 쏟아 붇는다. 필자처럼 ‘구시대 사람’들이 대학 다닐 때는 문리과 대학이란 단과대학에서 아테네 학당처럼 철학·미학·과학·수학 등을 포함한 교양을 쌓았다. 이 아테네 학당을 대표하는 인물에 플라톤, 피타고라스 같은 현자들이 있다.

[김제완의 물리학 이야기] 플라톤 기하학

그중 플라톤은 이상주의적 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물질의 원소설을 시작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세상은 물·불·공기·흙 그리고 제5의 물질(Quintessence라고 하며, 우주에 퍼져 있는 형체 없는 물질이라고 했다)로 이뤄져 있고 이들을 잘게 쪼갠 기본단위인 원자는 다섯 개의 ‘플라톤의 고체(Platonic Solid)’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불의 원소는 정4면체, 흙은 정6면체, 공기는 정8면체, 물은 정20면체이며 이들을 이어주는 제5의 물질은 정12면체의 모양이란 것이다. 요약하면 세상은 5개 원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모양은 다섯 종류의 정다면체라는 것이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물론 그의 주장은 맞지 않는다. 현대과학은 세상이 5원소가 아니라 수소·산소·질소·우라늄 등 100여 종 원소로 돼 있다고 본다. 그러나 원소의 기본은 양성자·중성자·전자이고 여기에 빛의 알갱이인 광양자 그리고 요즘 입자물리학자들이 열을 올리며 찾고 있는 ‘암흑물질’을 합하면 플라톤의 5원소설이 일리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플라톤의 원소설에서 더 음미해야 할 점은 원소설의 배경인 기하학에 대한 사고방식이다. ‘물질·현상의 배경인 5원소는 정육면체들의 기하학적 쌓임’이며 따라서 기하학이야말로 과학과 자연의 밑바탕을 이루는 본질이라는 관찰이다.

그러나 우리 인류는 거의 3000년 동안 플라톤의 ‘자연 기하학’을 깊이 새기지 못했다. 20세기에 들어 비로소 아인슈타인이란 천재가 자연의 기하학을 살려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한발 더 나아가 플라톤 기하학을 완전히 창조적으로 극복해 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만유인력을 새로운 기하학으로 풀이했다. 뉴턴은 두 물체가 있으면 이들 사이에 그들의 질량(무게)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역비례하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제안했다. 이 법칙은 모든 천체의 움직임을 잘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여기에 불만을 가졌다. 태양이 지구를 끈으로 묶어 당기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태양이 지구를 잡아당긴다’는 만유인력이 전달되는가? 그뿐이 아니었다. 수성은 태양을 돌 때 ‘한 바퀴 돌면 제자리에 오는 게 아니라 궤도가 뉴턴의 만유인력이 예측한 것보다 43초 어긋나는’ 세차운동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특허국에서 일하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던 26세의 청년 아인슈타인은 1905년 획기적인 논문 4개를 발표한다. ‘특수상대성이론’, ‘E=mc²’, ‘브라운 운동’ ‘광전효과’인데 하나하나가 노벨상 감이다. 그중 특수상대성이론은 ‘우리가 사는 이 우주는 시간(1차원)과 공간(3차원)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융합된 4차원 세계인 시공(時空)으로 돼 있다’는 내용이다. 그런 주장을 하면서 아인슈타인은 플라톤 이후 뉴턴까지 지배한 유클리드의 3차원 기하학을 버렸다. 새 사고방식으로 기하학을 4차원 세계로 승격시켰다.

젊은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핵심은 ‘우주는 무거운 천체가 있는 근방에서는 굽는다’는 것이었다. (그림참조) 쉽게 말해 무거운 별일수록 주변 공간은 더 휘고 굽는다는 것이었는데 ‘공간이 휜다’는 건 당시로선 획기적 발상이었다. 이를 태양계에 적용하면 이렇게 된다. ‘지구는 정지해 있으면 무거운 태양이 만드는 계곡처럼 굽은 공간을 따라 굴러 떨어진다. 그러나 속도를 갖고 도는 지구는 원심력 덕택에 굽은 경사를 이겨내고 계속 돌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생각을 기초로 일반상대성이론을 만들었는데 이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하면 ‘굽은 공간의 기하학 방정식’이다. 새 방정식으로 수성의 세차운동도 계산했더니 뉴턴처럼 43초 오차가 사라지고 딱 들어 맞았다.

그는 이런 생각도 했다. 빛은 직진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무거운 천체 근방의 공간은 굽어 있어 이를 지나는 빛은 당연히 굽어야 된다.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빛이 굽는 각도를 계산했고, 곧 뒤이어 에딩턴이 이를 확인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은 세계 제1의 과학자가 된 것이다.

플라톤적 사고방식의 훌륭함은 과학-공간-모양-기하 같은 것을 한데 묶어 융합적 사고를 한다는 점이다. 아인슈타인도 천체-공간-기하학 같은 것을 융합해 사고했다. 그 뿌리가 바로 플라톤이다. 그래서 플라톤의 생을 구체화하면 좋은 STEAM 교육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교육을 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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