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면 중단 위기에 놓인 0~2세 무상보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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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0~2세 무상보육 정책이 결국 사달 났다. 엊그제 전국 시·도지사협의회가 무상보육에 필요한 돈을 못 내겠다는 바람에 전면 중단 위기에 처했다. 중앙정부가 다 돈을 부담하라는 지자체의 버티기는 물론 문제다. 하지만 졸속으로 무상보육을 결정한 정치권의 포퓰리즘과 이를 방기한 중앙정부의 무기력함에 근본 책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0~2세 영아의 무상보육이 졸속으로 시작될 때부터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국가 정책이 아무런 준비 없이 무계획적으로 추진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단적인 사례다. 그 뒤에 일어난 극심한 혼선은 모두 이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원대상부터 당초 예상과 틀렸다. 정부는 지원대상을 당초 17만 명으로 잡았다. 보육시설을 이용하고 있는 영아들의 숫자만 계산했다. 그래서 중앙정부가 3700억원, 지자체가 3400억원 부담하면 될 걸로 예산을 짰지만 오산이었다. 보육이 무상화되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집에서 키우던 부모까지 보육시설을 찾으면서 신규 지원 대상이 13만 명 늘었고, 중앙정부의 부담만도 2800억원 증가했다. 혼선은 이뿐만 아니다. 집에서 키울 때는 왜 지원하지 않느냐는 비난에 양육수당 대상자를 내년부터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무상보육을 하려면 만 3~4세부터 먼저 하는 게 옳다는 비판 때문에 당초 계획을 앞당겨 내년부터 만3~4세도 무상보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정책 혼선도 문제지만, 무상보육의 체감 효과가 낮은 건 더 문제다. 막대한 돈을 쓰면서도 부모에게는 큰 도움이 안 되고 보육시설의 배만 불리고 있다면 이런 정책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보육료는 정부가 지원하지만, 부모가 보육시설에 내야 할 돈은 이뿐만이 아니다. 입학금, 체육복비, 현장학습비, 특별활동비, 행사비 등이 그것이다. 무상 보육으로 인해 부모의 부담이 줄자 이런 명목의 잡비가 크게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교재교구비 같은, 이전에는 없던 항목까지 신설되고 있다고 한다. 한두 시간만 영아를 맡겨도 종일 보육료를 받는 실정이다. 게다가 보육시설이 정부로부터 받는 돈은 보육료 외에 시설지원금도 있다. 가령 0세 영아의 경우 보육료로 39만원, 시설지원금으로 36만원 등 모두 76만원을 정부에서 지원받는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이만큼 수익성 좋은 사업이 또 어디 있을까. 어린이집에 웃돈이 수천만~수억원씩 붙었다, 불법 매매가 성행한다는 등의 얘기가 놀랍지 않은 이유다.

 정부가 국민의 혈세인 예산을 이렇게 낭비해선 안 된다. 충분한 사전 준비를 통해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접근해야 할 보육정책이 졸속으로 추진된 대가라고 내버려두기엔 너무나 큰 비용이다. 무상보육을 지금 와서 되돌리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더 늦기 전에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똑같은 돈을 쓰더라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고, 효과를 극대화해야 할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