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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백홍석, 이 장면을 다시 한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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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랭킹 9위 백홍석 9단(오른쪽)이 비씨카드배에서 중국 7위 저우루이양을 격파하고 한국 기사로는 유일하게 4강에 올랐다. 국내 대회 우승 1회, 준우승 9회를 거둔 백홍석이 과연 세계무대에서 위기에 몰린 한국 바둑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 한국기원]

중국 폭풍이 몰아친 제4회 비씨카드배(우승상금 3억원)에서 백홍석(26) 9단이 중국의 저우루이양 5단을 격파하고 홀로 4강에 올랐다. 백홍석은 한국 바둑의 최강자급은 아니다. 세계무대에선 우승 경력도 없고 기대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몸통과 줄기가 다 쓰러지며 한국 전멸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백홍석은 잇따라 끈질긴 역전승을 거두며 살아남았다. 16강전 반집 승, 8강전 1집반 승. 소설 속의 ‘마지막 잎새’처럼 기적같이 살아남은 백홍석 9단이 위기를 맞은 한국 바둑에 힘이 돼줄 수 있을까.

 비씨카드배에서 한국은 이세돌 9단 등 랭킹 1~6위가 모두 탈락하며 16강전에 단 3명이 올라갔다. 박영훈 9단(7위), 백홍석 9단(9위), 이원영 3단(23위)이 그들이다. 중국은 랭킹 공동1위인 셰허, 탄샤오를 비롯해 3위 구리, 4위 장웨이제, 6위 쿵제, 7위 저우루이양과 천야오예, 9위 박문요 등 최정상급이 모두 합류한 13명의 대 부대가 16강에 올랐다. 그중엔 박정환 9단과 이창호 9단을 쓰러뜨린 16세 소년강자 미위팅도 있었고, 이세돌 9단을 쓰러뜨린 당이페이 4단도 있었다. 12~15일 나흘간 16강전을 치른 결과 한국은 두 명이 살아남았다. 이원영 3단을 이긴 박영훈 9단과 니우위티엔 7단을 꺾은 백홍석 9단이다.

 16일 박영훈 9단이 18세 신예 당이페이 4단에게 지고 말았다. 32강전에서 이세돌 9단을 이겨 이름을 알렸던 당이페이(18)는 세계대회에서 두 번이나 우승한 박영훈마저 쓰러뜨리며 4강에 진출해 중국 언론에서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17일 홀로 남은 백홍석은 저우루이양과 맞섰다. 흐름은 나빴다. 전투가 강해 ‘돌주먹’으로 불리는 백홍석이 중반 전투에서 실패하며 그로기 상태까지 몰렸다. 한국 전멸의 위기가 목전에 닥치자 바둑이 생중계되는 인터넷 사이트마다 팬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배어 나왔다. 한데 이때부터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무서운 추격전이 시작됐고, 바둑은 무려 337수까지 가는 대 접전 끝에 백홍석 9단이 1집반을 이겼다. 기대하지 않았던 백홍석이 홀로 4강에 올랐다.

 백홍석은 다음달 9일 후야오위 8단과 준결승전을 치른다. 후야오위는 미위팅의 돌풍을 잠재운 뒤 셰허마저 꺾었다. 후야오위(30)는 중국랭킹 10위의 기사. 다른 또 한 판의 준결승에선 구리, 천야오예를 제압한 박문요 9단과 당이페이 4단이 대결한다.

 백홍석은 근성이 뛰어나고 힘이 좋아 어려서부터 촉망받는 기재였으나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국내 대회에서 우승 1회에 준우승은 무려 아홉 번을 기록해 ‘2등 전문’이란 야속한 딱지도 붙었다. 하나 18일 만난 백홍석은 “내 바둑 인생에서 처음 맞는 절호의 기회”라며 우승에 대한 열망과 자신감을 드러냈다. “세계대회 우승은 내 꿈이고 소망이다. 생각만 해도 목이 마르다. 그러나 승부가 무언지 나도 알 만큼 안다. 모든 것을 잊고 내 스타일의 바둑을 둘 수 있느냐, 그게 열쇠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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