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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미국에서 늘고 있는 '황혼 이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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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트 레비달(73)
은 48년 간 함께 살아온 남편과 지난해 이혼했다. 슬하엔 3명의 자녀와 2명의 손자가 있다. 그녀는 반세기 전 자신이 사랑에 빠진 2차대전 전투기 조종사와 함께 세계 여행을 떠날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그만 남편이 한 젊은 여성에게 빠지고 만 것.

그녀는 “줄곧 그가 어쩌면 마음을 바꿀지 모른다고 생각했다”며 “늦은 이혼은 새 출발을 할 시간이 그만큼 부족해 젊었을 때의 이혼보다 가족에 대한 타격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제 가족들은 명절이 돼도 모이지 않는다. 딸 밥스 레비달(44)
은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났다”고 말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라는 말은 미국인의 평균수명이 76세인 요즘보다 47세였던 20세기 초에 지키기가 더 쉬웠다. 수명 연장은 부부가 서로에게 싫증을 느낄 시간이 더 길어졌음을 뜻한다. 美 변호사협회(ABA)
소속 노인법위원회의 케이트 베트라노 위원장은 “내 조부모 세대는 젊어서 결혼해 자식을 키우고 죽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건강하게 살 날이 많이 남다 보니 노인들도 이젠 ‘남은 날도 행복하게 살자’고 결심한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비아그라의 등장으로 적어도 남성들은 새로운 행복의 기회를 잡았다. 미국 최대의 결혼법 전문 법률회사 실러, 듀칸토 & 플렉의 도널드 C. 실러 변호사는 요즘 이혼하는 노인들이 전보다 “상당히 늘었다”고 말했다. 메릴랜드州의 경우 65세 이상 남성의 이혼율은 지난 20년 간 11% 증가했다. 노인정신과 의사 마크 D. 그라프는 “‘30년을 함께 살다보니 이젠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이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경제적 변화도 이혼을 부추긴다. 노인들은 이제 더 부유할 뿐 아니라 이혼시에도 대개 재산을 반반씩 나눠 갖게 돼 여성들이 전에 비해 더 잘 살 수 있게 됐다. 은퇴로 인한 혼란감이 결혼생활을 깰 때도 있다. 은퇴는 인간 생활에 활력을 주는 활동의 끝을 의미하는 동시에 부부가 서로에게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의 상실을 의미한다.

ABA의 가족법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샌드라 모건 리틀은 “‘하루 종일 남편과 함께 지내기란 정말 고역’이라고 말하는 여성들이 많다”고 말했다(은퇴 노인이 많이 사는 플로리다·애리조나州의 이혼율은 미국에서 가장 높다)
.

이혼 사유는 남녀 간에 서로 다르다. ABA의 베트라노는 노년 여성들이 종종 ‘적절한 인정이나 존경을 받지 못하고 마냥 주기만 하는’ 역할에 염증을 느껴 이혼합의금으로 혼자 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여배우 캐럴 채닝은 극단적인 경우다. 그녀는 1998년 42년 간 함께 살아온 남편이자 프로듀서 겸 작가인 찰스 로웨에게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남편이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의 재산을 낭비했으며 자신과는 단 두 차례 성관계를 가졌을 뿐이라는 게 이유였다(로웨는 지난해 사망했다)
. 반면 남성들은 이혼을 “제2의 바람 또는 새로운 여성과 새로운 삶을 살 두번째 기회로 여긴다”고 베트라노는 말했다. 펜실베이니아州의 한 노년 여성은 남편이 훨씬 더 어린 여성과 사랑에 빠진 뒤 자신에게 이혼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남편과 젊은 여인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지만 남편은 이혼소송을 취하하지 않았다.

변호사들은 노년기의 재혼은 특히 깨지기 쉽다고 지적한다. ‘이혼한 노년층 의뢰인을 대변하는 법’의 저자 코니 퍼첼 변호사는 “40∼50년 조강지처로부터 물심양면의 도움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지만 두번째 부인으로부터 그런 도움을 받기는 어림도 없기 때문에 얼마 못가 파경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새 부인은 첫번째 결혼에서 낳은 장성한 자녀들과도 마찰을 빚을 수 있다.

많은 노년 여성들은 이혼보다 사망으로 배우자를 잃는다. 65세 이상 미국인 가운데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은 남성의 75%, 여성의 43%다. 이혼한 사람은 약 7%(약 2백만 명)
다. 노년에 이혼한 사람들은 자신을 낙오자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부인 위니와 1996년 이혼한 넬슨 만델라에게서 보듯 노벨평화상 수상자라고 해서 결혼생활의 유지법을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델라도 다른 많은 노인들처럼 또 한 번의 기회를 잡았다. 그는 80회 생일 축하 행사의 일환으로 재혼했다.(Karen Springe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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