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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천당 위에 분당, 분당 위에 양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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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철호
논설위원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별명이 포인터다. 판세를 잘 읽고 냄새를 귀신 같이 맡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총선에서 죽었다 살아났다. 625표차로 막판에 뒤집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보다 더 위험했다. 그때는 시장 사람들이 욕하고 명함 던지고 해서 미리 대비했다. 이번엔 위기조차 못 느꼈다.” 이재오 의원에 버금가는 지역구 관리로 겨우 쓰나미를 넘겼다. 세대 투표와 신여촌야도(新與村野都)의 바람은 그만큼 거셌다. 정 의원은 “이제 영호남을 빼면 어디도 안심할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서울 강남 3구가 새누리당 텃밭이란 건 옛말이 됐다. 천당 위에 분당? 아니다. 이미 흔들리는 조짐이 뚜렷하다. 지금 정 의원이 제일 부러워하는 수도권 지역구는 경기도 양평·이천·광주다. 양평에선 친이계 정병국 의원이 MB 심판에 아랑곳 없이 압승했다. 이천과 광주도 새누리당이 이겼다. 노장년 비중이 높은 농촌인 데다 은퇴 이후 전원주택으로 옮겨오는 서울 부자들이 늘어나는 덕분이다. 정 의원은 “이제 분당 위에 양평”이라고 시샘했다.

 총선에서 박근혜 위원장의 ‘기다림의 미학’은 돋보였다. 보통 내공이 아니다. 이에 비해 야권은 눈앞의 현안을 쫓아다녔다. 그중 하나가 제주 해군기지. 민주당은 제주 3석은 건졌을지 몰라도 군 부대가 밀집한 경기북부와 강원도에서 죽을 쑤었다. 이 지역들은 “구럼비만 아름답고, 60년 넘게 군 부대를 끼고 사는 우리는 바보인가”라며 뿔났다. 경남의 창원진해구도 집 전화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은 28%로 낮았다. 막상 뚜껑을 여니 두 배가 넘는 58.6%를 얻었다. 해군 장병과 가족들이 ‘해적기지’ 발언을 몰표로 응징한 것이다.

 ‘나꼼수’ 김어준의 통찰력도 대단하다. 그는 『닥치고 정치』에서 “선거는 정치인이 대중들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아왔던 부채의식, 그 빚을 한번에 찾아가는 것”이라 했다. 노무현도 거듭된 낙선으로 차곡차곡 우리 사회에 예치해둔 마음의 빚을 돌려받아 대통령에 올랐다(188페이지). 폐족(廢族) 신세였던 친노(親盧)의 부활도 그의 비극적 자살에 대한 마음의 부담 때문이다. 똑같은 논리라면 박 위원장도 이번에 큰 빚을 인출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비극적 죽음, 충청권의 세종시, 부산·경남의 동남권 신공항으로 쌓아놓은 부채의식이었다.

 지금 사이버 공간에는 2030 세대의 분노가 지배한다. 다 이긴 총선을 잡지 못했다는 좌절감 때문이다. 광고에 빗대 “아버님 댁에 보일러 빼드려야겠어요”라는 놀이가 한창이다. “시골 아버님께 보낼 용돈도 줄여야겠어요” 등의 패러디도 꼬리를 문다. 보수 쪽에 투표한 부모 세대에 대한 반감이 묻어난다. 이런 분노는 아마 연말 대선에서 폭발할 것이다. 반면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박 위원장에 대한 마음의 빚을 상당 부분 갚았다고 느낄지 모른다. 새누리당의 승리도 따지고 보면 소선거구제의 마법에 불과하다. 어차피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는 딱 절반씩이다. 야권이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하고 헛발질만 자제한다면 대선 흐름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새누리당은 이번에 이준석 비대위원과 손수조 후보로 재미를 봤다. 야권은 똑같은 ‘새 피’이지만 ‘고대녀’와 김용민 후보로 낭패를 겪었다. 앞으로 보수진영은 더 이상 지역주의와 여촌야도(與村野都)에 기대기 어렵다. 이런 분위기라면 ‘좀 더 왼쪽으로, 좀 더 젊게’가 살 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의 몸놀림이 총선 이후 갑자기 둔해진 느낌이다. 성(性) 추문과 논문 베끼기의 당선자 처분에 미적대고 있다. 로마의 카이사르는 두 번째 부인 폼페이아와 이혼했다. 법원은 그녀의 스캔들에 무죄를 내렸지만 카이사르는 단호했다. 『영웅전』을 쓴 플루타르크는 “그녀는 세상의 의심을 받는 것만으로도 카이사르의 아내가 될 자격이 없다”고 썼다. 총선은 끝났고, 대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누가 먼저, 그리고 누가 더 많이 바꾸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어쩌면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삼성의 구호가 정치판에 훨씬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