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건은 택배 차량이 총 2회 주차 위반을 한 사항입니다. 배달 때문이니 선처를 부탁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첨부된 배송장 날짜가 단속일자와 다릅니다.” “생계형 차량이고 회사가 아니라 기사가 과태료를 부담해야 하니 고려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인데 본인이 조심해야죠.” “다음부턴 올바른 배송장을 보내라는 안내문을 발송하는 건 어떨까요.”
#2 “이 지역은 남부터미널 근처입니다. 공용·사설 주차장을 찾기 힘든 곳이죠. 부모님을 터미널까지 배웅하려고 주차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런 일 겪어봤어요. 거기엔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잖아요. 터미널 앞에서 지인을 내려주고 바로 갈 수밖에 없었죠.”
지난 4일 오후 3시 서초구청 5층 소회의실. ‘불법 주·정차 단속 의견진술 심의위원회’가 열렸다. 서초구 이덕행 주차관리팀장은 위반자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한 자리에 모인 심의위원들은 의견을 나눴다. 이 회의에서는 위반자의 과태료 면제 여부를 결정한다. 위원은 7명이다. 이 팀장을 포함해 공무원 3명과 주민 4명이다.
서초구는 지난해 11월부터 공무원만 참석하던 심의위원회에 주민을 포함시켰다. 2008년 국민권익위원회 권고 사항이었다. 지난해 진익철(61) 서초구청장의 지시사항이기도 했다. 시행 전 3개월 동안 준비기간을 거쳤다. 심의위원회 규칙을 새로 만들었다. 각 동 주민센터 추천을 받아 민간위원 35명을 위촉했다. 대부분 주부·자영업자다.
회의는 매주 1회 1시간~1시간30분간 열린다. 회의마다 200~250건을 처리한다. 의결 방법은 다수결이다. 주민이 공무원보다 1명 많은 이유는 이 원칙 내에서 주민 의견을 더 반영하기 위해서다.
주·정차 위반자는 사전통지서 발급일로부터 20일 안에 ‘의견 진술’을 제출 할 수 있다. 서초구는 한 해 1만2000여 건을 접수한다. 전체 단속 건수의 5%수준이다. 이에 대한 면제비율은 80%대다. 위원회에서 ‘주민배심원제’를 도입하기 전에는 70%대였다.
배문주(41·방배2동) 위원은 “공무원 입장이 아닌 주민 입장에서 생각하니 위반자의 의견을 더 받아들여주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기호(64·반포본동) 위원은 “화장실이나 약국에 가야 하는 등 긴급한 상황 때 주·정차를 어기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다. 이에 대한 과태료 부과 여부를 민·관이 함께 협의한다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참여하면서 종전보다 단속이 강화된 불법 주·정차 지역이 있다. 인도와 도로 모퉁이 등이다. 인도에 주차할 경우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 걸림돌이 된다. 모퉁이에 주차하면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민간위원은 지역 주차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같은 생활권에 사는 주민의 입장을 대변해 준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위반자들이 단속에 불만을 터트리다가도 주민과 함께 심의했다고 말하면 수긍한다. 제도 시행 후 이런 민원이 줄어들었다”고 덧붙였다.
진 서초구청장은 “주민자치 정신과 맞닿아 있다. 공무원과 주민이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조한대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