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잡지‘트웬’으로 저항문화 꽃피우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65호 27면

1959년 창간돼 71년 폐간된 잡지 ‘트웬’의 표지 이미지들.

디자인 평론가 존 헤스켓은 “우리에게 정체성은 더 이상 타고난 자신의 성격이나 특징을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태생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으로 접근했을 때의 이야기다. 다국적 기업의 지배, 인터넷·통신망의 발달로 인한 초국적 상황, 영어 광풍으로 인한 불완전한 ‘이중언어’의 현실 속에서 한국 아이들에게 한국인이란 정체성은 오히려 억압기제가 될 수 있다.

시대를 비추는 북디자인 ① 독일의 첫 아트디렉터 빌리 플렉하우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거꾸로 가는 것이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의미 부여를 통한 정체성 만들기다. 김춘수의 시 ‘꽃’은 그런 디자인 행위를 시사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1925년 독일 벨베르트에서 태어난 빌리 플렉하우스(작은 사진)는 독일의 60년대 시각문화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독일의 첫 아트디렉터로 불리며 70년대까지 독일의 잡지와 책, 로고타입, 포스터 등 다양한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했다. 독일 신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주간지를 아트디렉팅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에게 따라붙는 독일의 ‘첫’ 아트디렉터란 수식어의 배경에는 독일 디자인의 역사가 깔려 있다. 유럽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디자인 토양을 닦았던 독일 디자인계는 히틀러 집권 후 나치 세력의 탄압으로 터전을 잃었다. 많은 예술가가 스위스나 미국으로 이민했고, 디자인은 그곳에서 새롭게 싹텄다. 상대적으로 독일 디자인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침체기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30대의 젊은 플렉하우스는 독일의 시각문화를 재건하는 상징적 역할을 맡게 된다. 한 번은 ‘트웬’이라는 잡지를 통해, 다른 한 번은 독일 주어캄프 출판사 책 디자인을 통해서다.

플렉하우스는 기자 출신이었다. 유년 시절엔 반항기로 똘똘 뭉친 학생이었다. 좌익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나치의 교육·사회 체제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군에 복무해야 했던 10대에는 반정부 인쇄물을 만들기도 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걸 끝까지 밀고 나갔던 그의 성향을 두고 어느 기자는 ‘마키아벨리적’ 사고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이상주의자였다. “자신의 꿈을 기술하고 싶다면, 사람은 온전히 깨어 있어야 한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이 시구를 그는 즐겨 인용했다고 한다.

이렇듯 저항정신, 마키아벨리적 태도 그리고 이상주의로 집약될 수 있는 그의 성격은 59년 창간돼 71년까지 출간된 트웬에 그대로 녹아 들어갔다. 50년대 후반까지 기자로 활동했지만 59년 트웬이 창간될 때 그는 이 잡지의 디자이너가 됐고 나중에는 편집장까지 도맡았다. 그 당시로선 보기 드문 일인다역이었다.
트웬은 영어 ‘트웬티(twenty)’에서 따온 제호(題號)인데 10~20대 젊은 층을 겨냥해 만들어진 잡지였다. 당시의 사회문화적 상황은 반(反)권위주의, 반인종주의, 반전의 메시지부터 여행, 음악, 미술, 문학 등 모든 섹션에서도 진보적 노선을 걷고 있었다. 그것은 전쟁 이후 침묵으로 일관해오던 부모 세대에 대한 반발이자 미국에서 들어오는 젊고 패기 있는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대한 욕구이기도 했다. 잡지는 유럽이 직면한 과도기의 사회문화적 상황과 더불어 당시 새롭게 태동하는 가치관을 내세우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플렉하우스는 미국과 독일의 디자인을 결합해 트웬을 만들었다. 도발적으로 연출한 사진과 대범한 타이포그래피는 그 자체가 반항적 시각언어로 읽히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트웬의 제작진이 플렉하우스의 독재적 스타일에 반발하면서 그는 쫓겨나다시피 트웬을 떠나야 했다. 이후 1년도 안 돼 트웬은 폐간됐다.

그가 60년대부터 진행해 나갔던 독일 주어캄프 출판사를 위한 책 디자인은 차분하고 고전적이었다. 주어캄프는 헤르만 헤세, 베르톨트 브레히트, 발터 베냐민 등 독일 및 서유럽의 문인·철학자들을 중심으로 사유의 ‘현대화’를 추구했던 출판사였다. 트웬과는 차별되는 디자인 전략이 필요했던 것이다. 트웬이 미니스커트와 히피, 로큰롤의 정신을 기반으로 한 저항의 디자인이었다면 주어캄프는 지성인의 사유를 기반으로 했던 성찰의 디자인이었다. 그래서 주어캄프의 디자인은 최소한의 소재와 표현 방식을 쓰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했다. 당연히 사진보다는 활자 중심이었다. 플렉하우스는 시대정신을 이해했고, 청년들의 갈증을 마음으로 느끼고 작가들의 사유를 음미할 줄 알았다. 그렇게 그는 내용에 대한 깊은 사고와 이해를 바탕으로 전후 독일 시각문화를 재편하는 데 한몫했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독일 디자인과 구분되는 새로운 정체성이었다.

플렉하우스는 이후 교육자로서 활동하다가 81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 세상을 떴다. 그의 손길이 더 이상 미치지 않는 오늘의 주어캄프는 시각적 개성을 잃은 지 오래다. 정체성은 이렇듯 존재하다가도 사라진다. 좋은 디자인은 시간을 관통하며 버틸 줄 아는 고목(古木)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곳 현재를 사는 우리에겐 그런 고목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도, 그런 디자이너를 바라는 사회도, 그런 디자이너를 찾아낼 줄 아는 안목도 부재하다. 정체성은 내용과 형식의 균형에서 만들어진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만들어진 디자인, 내용을 담아내지 못한 디자인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다.



전가경 이대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세계의 아트디렉터 10』을 썼으며 서울여대에서 디자인을 가르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