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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골 근처…" 성폭행 신고했는데 처참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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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12=112경찰입니다. 말씀하세요.

신고자=예 여기 못골놀이터 전의 집인데요. 저 지금 성폭행 당하고 있거든요.

112=못골놀이터요?

신고자=예. 못골놀이터 전의 집인데 어느 집인지 모르겠어요.

112=지동요?

신고자=예 지동초등학교 좀 지나서 못골놀이터 가는 길쯤으로요.

112=선생님 핸드폰으로 위치조회 한 번만 해볼게요.

신고자=네.

112=저기요, 지금 성폭행 당하신다고요? 성폭행 당하고 계신다고요?

신고자=네네.

112=자세한 위치 모르겠어요?

신고자=지동초등학교에서 못골놀이터 가기 전.

112=지동초등학교에서.

신고자=못골놀이터 가기 전요.

112=누가 누가 그러는 거예요?

신고자=어떤 아저씨요. 아저씨 빨리요 빨리 .

112=누가 어떻게 알아요?

신고자=모르는 아저씨예요.

112=문은 어떻게 하고 들어갔어요?

<긴급공청 시작>

신고자=저 지금 잠갔어요.

112=문 잠갔어요?

신고자=내가 잠깐 아저씨 나간 사이에 문을 잠갔어요.

112=들어갈 때 다시 한 번만 알려줄래요.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오는 소리)

신고자=잘못했어요. 아저씨 잘못했어요.

112=여보세요. 주소 다시 한 번만 알려주세요.

 지난 1일 오후 10시50분58초 경기지방경찰청 112센터에 걸려온 신고 전화 내용이다. 20대 여성 A씨(28)가 성폭행 당하는 급박한 상황을 현장에서 신고하는 장면이다. 신고 전화는 1분50여 초 동안 이어졌다. 이후 신고자의 말이 끊어졌다. 휴대전화는 4분 정도 연결돼 있다가 끊겼다(전원 끈 것으로 추정).

 경찰은 신고 접수 도중 사태의 급박함을 감지하고 신고전화를 ‘긴급공청’으로 전환했다. 이는 긴급상황으로 판단해 신고전화 내용을 112센터와 현장 순찰차에서도 동시 청취 가능하도록 하는 조치다. A씨는 이후 13시간 만인 다음 날 오전 11시50분쯤 신고 장소인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동의 중국동포 우모(42·일용직)씨가 사는 쪽방 안에서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우씨는 시신을 훼손하고 있었다.

 범행 장소는 신고자가 지목한 지동초등학교에서 60m 정도 거리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곳은 지동초등학교에서 못골놀이터로 가는 길목이다. 신고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이 때문에 경찰의 대응이 논란이 되고 있다.

 우선 “지동초등학교 좀 지나서 못골놀이터 가는 길쯤”이라고 신고자가 장소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는데, 13시간 동안 경찰은 무엇을 했는가 하는 지적이다. 게다가 신고접수 직후 대규모의 수사인력을 현장에 출동시킨 경찰의 탐문수사 및 수사기법에 대한 적절성도 도마에 올랐다. 일부 네티즌은 “경찰이 사이렌이나 경고방송을 요란하게 지속적으로 했다면 목숨은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고 했다.

 경찰은 신고접수 후 10여 분 만에 순찰차 6대와 형사기동대 등 35명이 현장에 도착해 휴대전화 기지국 반경 500m 이내에서 탐문 수사를 벌였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수색영장이 없이 개인주택을 일일이 수색할 수 없어 불 켜진 집들을 위주로 탐문을 벌였다”며 “사이렌과 경고방송을 하지 않은 것은 성폭행범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수원=전익진·유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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