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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눈물 쏟은 이종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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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5일 34년간의 야구 인생을 마감하는 은퇴 기자회견에서 “가족에게 고맙다”는 뜻을 전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종범은 “언젠가는 지도자가 돼 타이거즈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뉴시스]

“이제 제 이름 뒤에 ‘선수’라는 말을 붙이지 못하게 됐네요. 분에 넘치는 많은 사랑을 받아 감사합니다.”

 한국 프로야구의 레전드 이종범(42·전 KIA)의 목소리는 떨렸다. 얼굴은 붉게 상기됐고, 만감이 교차하는 듯 무거운 표정으로 바닥만 응시했다. 꾹 참았던 눈물은 가족 이야기 때 흘러나왔다. 5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공식 은퇴 기자회견장에서였다.

 이종범은 뛰어난 야구센스로 ‘야구천재’라고 불렸다. 1993년 KIA의 전신인 해태에서 데뷔한 그는 16시즌 동안 1706경기에서 타율 2할9푼7리·1797안타·730타점·510도루를 기록한 ‘최고의 1번타자’였다.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 두 차례, 골든글러브를 여섯 차례(유격수 네 번, 외야수 두 번) 차지했다. 한 시즌 최다 안타(196개)와 최다 도루(84개·이상 1994년) 기록도 갖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노력’이 그를 만든 원동력이라고 꼽았다. “다른 선수들보다 체격이 좋거나 파워가 좋은 건 아니었다”고 자평한 그는 “내가 지금까지 후배들과 경쟁할 수 있었던 건 노력 덕분이다. 4타수 4안타에 만족해선 안 된다.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그는 93년 신인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일과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 일본전에서 2루타를 치고 기쁨에 저절로 두 손을 번쩍 들던 때를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반면에 일본 주니치 시절 공에 맞아 팔꿈치 부상을 입었던 일과 한국에서 안면 부상으로 시름했던 시간은 다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야구로 세상과 사회를 배웠다는 그는 평생을 야구와 함께하겠다고 팬들에게 약속했다. 이종범은 “34년간 야구만 해왔다. 야구밖에 아는 게 없다. 선배들의 실패 경험을 거울 삼아 사업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어 “한국 프로야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겠다. 선수와 코치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인간미 있는 지도자로 남도록 노력하겠다. 언젠가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여러분을 만날 날을 기다리겠다”고 말해 지도자 입문 가능성을 열어놨다.

 은퇴기자회견 중간 “할리우드 스타가 된 것 같다”고 농담하던 그도 가족 이야기에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이종범은 “힘들 때 가족이 있어 큰 힘이 됐다. 소중한 가족 덕에 행복했다”며 “한 시즌 최다 도루 기록을 아들 정후가 깨 줬으면 한다”고 했다. 정후군은 광주 무등중 내야수로 뛰고 있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이종범은 “사랑합니다”라며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선수 이종범과 작별을 고하는 마지막 인사였다.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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