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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선의 국악읽기] 추임새

중앙일보

입력

"거 씨끄러워 음악을 못 듣것소."
"웠다, 그런 소리마요. 원래 추임새란 이렇게 하는 거요."

어느 창극 공연장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 언쟁이 오갔다. 두 노인은 관객이 침묵을 지키고 공연을 관람하는 그 엄숙함을 깨면서 난데없는 추임새 실랑이를 벌였다.

무대 가까운 앞좌석에서 자리한 두 노인은 무르익어 가는 공연장의 분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급기야 다른 노인이 끼어들었다.

"저 할머니가 뭘 모르고 저러네." 어느 소극장의 연주회에서 대다수의 청중이 숨죽여 산조가락에 귀가 팔려있는데 한 대학생이 제 흥에 겨워 "잘한다" "얼씨구" "좋다" 하며 추임새를 연거푸 해댔다.

정말이지 소음에 가까웠다. 중간 휴식이 끝나고 방송국 직원이 학생에게 자제해 줄 것을 거듭 윽박지르듯 당부했다. 실황녹음 중이던 방송국 직원들에게 그 추임새는 참을 수 없는 소음 또는 잡음이었다.

주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장단에 두 세번씩 추임새를 해대는 그 학생의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정말이지 거의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요즘 공연장에서는 추임새를 넣는 청중을 만나기 어렵다. 소리 속을 알고 추임새를 멋지게 넣을 수 있는 귀명창이 적어진 탓도 있고, 현대식 무대 공간의 엄숙한 공연장의 분위기가 청중으로 하여금 추임새를 넣기에 어색함을 조성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을 일부러 칭찬해주다'라는 뜻의 '추다' 라는 우리 고유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짐작되는 추임새는 우리 음악에서는 빠질 수 없는 양념과 같은 것이다. 추임새는 청중이 소리를 평가하는 척도인 동시에 소리를 잘하도록 격려하거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아무 때나 흥이 난다하여 추임새를 하면 소리의 구조를 무시하는 처사다. 추임새 넣을 자리가 있는 법이다. 판소리에서 고수의 역할 중에서 큰 몫을 차지하는 것도 추임새다. 고수는 창자가 즉흥적으로 가락을 변형시킬 때에도 그 변화를 재빨리 알아차려 알맞게 장단을 쳐야한다.

고수의 음악적 경험과 자질이 중요하다 하여 '일고수 이명창(一鼓手 二名唱)'이라는 말이 생겼다. 타이밍에 맞지 않는 추임새는 서양음악의 연주회에서 타이밍 맞지 않는 박수처럼 어색하다.

아무리 뛰어난 명창과 고수일지라도 묵묵히 소리를 감상하는 점잖은 청중 앞에서는 소리할 맛이 나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추임새가 터져 나와야 흥이나 소리할 맛이 나는 것이다.

결국 추임새란 청중이 함께 연주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하면서 우리 음악을 생동감있게 만드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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