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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경 “난 괜찮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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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인경(왼쪽)이 연장 첫 홀 경기가 끝나고 걸어가고 있다. 그 뒤로 우승을 확정 지은 유선영과 캐디 애덤 우드워드가 기쁨을 나누고 있다. [팜스프링스 AP=연합뉴스]

김인경(24·하나금융그룹·사진)은 경기 후 차를 몰아 2시간 거리의 샌디에이고 집으로 돌아갔다. 한 뼘이 약간 넘는 거리의 퍼트가 돌아 나와 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을 놓친 후다. 골프 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김인경은 운전을 하면서 눈물이 자꾸 앞을 가려 여러 번 ‘빗물을 닦는 와이퍼를 켜야 하는 건 아닐까’ 착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인경은 집에 돌아가 많은 사람이 보내준 위로 메시지에 “나는 괜찮다”고 꼼꼼히 답장을 해 줬다.

 김인경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5년 전인 2007년 웨그먼스 챔피언십에서 김인경은 2홀을 남기고 로레나 오초아(멕시코)에게 3타 차로 앞서다 역전패했다. 오초아가 17번 홀에서 이글을 잡았고 김인경은 마지막 홀에서 1.2m 파 퍼트를 놓쳤다. LPGA 투어 첫 승을 놓친 김인경은 매우 아쉬웠지만 기자회견장에서 “지금 울 수 있지만 나는 울지 않겠다. 나는 랭킹 1위 선수와 잘 싸웠고 경험을 얻었다”고 말했다. 작고 어리지만 씩씩한 그의 모습에 기자들은 박수를 쳐줬다. 김인경은 ‘울지 않는 소녀’로 보도되기도 했다.

 이후 김인경은 상처를 보듬고 LPGA 투어 3승을 거뒀다. 오초아에게 진 빚도 갚았다. 2010년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한 뒤 상금 22만 달러(약 2억4500만원) 전액을 기부했다. 그중 절반을 오초아 자선재단에 냈다. 역전패 사건 때문에 서먹하게 지낸 오초아가 “우리 재단에 내는 게 맞느냐”고 몇 번을 물어봤다. 김인경은 “뛰어난 실력을 가졌으면서도 겸손하고 불우 어린이들을 돌보는 모습이 아름다워 기부했다”고 했다. 오초아는 자신이 만든 자선 학교 교실을 김인경에게 헌사했다. 교실엔 스페인어뿐 아니라 ‘김인경님 감사합니다’라는 한글도 적혀 있다.

 김인경은 이날 경기 후 “전반에 퍼터가 잘 안 돼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후반에 마음을 비웠더니 거짓말처럼 퍼터가 잘됐다. (서)희경 언니도 초반 흐름이 좋아 세 타 차 선두까지 갔는데, 메이저대회니까 끝까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쳤더니 나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희경 언니도 아쉽고, 나도 아쉬운 경기다. (유)선영 언니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 퍼트에 대해서 그는 “바로 보고 쳤는데, 살짝 오른쪽으로 흐르면서 돌고 나온 것이다. 마크 안 해도 될 정도로 짧은 퍼트였는데, 아쉽다”고 했다. 그러나 김인경은 인터뷰 말미에 “좋은 것 말고는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5년 전 오초아에게 역전패했을 때처럼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성호준 기자, 팜스프링스=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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