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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택 박병엽 부회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계적 통신업체인 모토로라와 한몫에 6억달러어치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휴대폰 수출계약을 체결, 어두운 경제에 한줄기 기대를 가져다 준 벤처기업 팬택. 이제 막 창업 10년을 바라보고 있는 팬택이 기술과 아이디어.뚝심으로 밀어붙여 일궈낸 성장 스토리는 어려운 환경에 직면한 국내 벤처기업들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최근 김포에서 여의도로 이사한 연구소를 따라 자신의 책상까지 옮겨 놓고 모토로라와 중국시장 공동진출 방안을 모색 중인 박병엽(朴炳燁.38) 부회장을 만났다.

-가뜩이나 경기가 안좋은데 모토로라와 6억 달러 수출계약을 체결해 든든하겠습니다.관련업체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듯 한데요.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겠지요.우선 국내 정보통신 산업 측면에선 시류에 맞는 아이템을 골라 기술개발을 하면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지요.

저희 회사 입장에선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만들었습니다.모토로라와 제휴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겁니다.회사 역량을 총집결해서 상품을 내놓았는데,세계시장을 주무르는 빅메이저로부터 기술·품질·코스트 등 모든 면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게 된 겁니다."

-내수 시장에선 단말기 보조금 폐지로 수요가 줄어 올해 어려움이 많았지요.
"지난 5월에 설비를 대대적으로 늘렸는데 모토로라에서 주문량을 줄였고,내수까지 없어져 7월에는 그냥 놀았습니다.

월 40만대까지 만드는데 7월에는 1만대 만드는 데 그쳤지요.주변에선 왜 라인 증설을 했느냐고 야단칠 정도였어요.

그러나 지금도 잘 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휴대폰의 모델 라이프는 6개월도 안 됩니다.한 프로젝트를 개발해서 단기간에 많은 물량을 팔아야 합니다.일정한 생산규모가 필요하죠."

-팬택의 주력상품인 휴대폰 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 같습니까.휴대폰이 생활에서 응용되는 범위도 달라지지 않을까요.
"많은 기관·연구소들이 앞으로 ‘무선의 시대’가 온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휴대폰은 커뮤니케이션 수단 중 가장 편리합니다.그런 면에서 콘텐츠 개발도 활성화될 테고,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갈수록 커질 걸로 봅니다.

휴대폰 시장이 어떻게 전개될지 생각하면 사실 저도 두렵습니다.머지 않아 세계적으로 10대 업체,시간이 더 흐르면 5-6위만 살아남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규모가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해집니다.연간 1천만대 이상 만들고,매출은 2조가 넘고,3백명 이상의 연구인력을 갖고 연간 25개 이상의 독자 모델을 개발할 수 있어야 살아남을 겁니다."

-팬택은 언제 그런 회사가 될까요.
"확실한 목표와 스케줄을 세워 놓긴 했지만 굳이 밝히고 싶지 않습니다.화려하게 비저을 제시하기 보다는 응축된 마음을 갖고 조용히 목표달성을 위해 매진할 겁니다."

-휴대폰이 대중화되면서 모델이 수시로 바뀌는 등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지적도 많았습니다.휴대폰 문화도 달라져야 하지 않나요.
"국내 휴대폰은 성능상 과소비입니다.자동차와 비교하면 에쿠스나 그랜져급에 해당되지요.필요 없는 기능이 너무 많아요.국내에서는 그렇게 만들지 않으면 안 팔립니다.

반면 해외에선 기본 기능만 잘 되고 가격만 싸면 됩니다.그런 과소비는 없어져야 합니다.그러나 역설적으로 첨단기술제품의 패션화 때문에 업체들이 대거 기술개발에 나섰고,이에따라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게 된 측면도 있습니다."

-휴대폰 문화나 예절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휴대폰 예절도 큰 문제입니다.(사무실 벽엔 붙은 ‘회의 중에는 휴대폰을 꺼주세요’라는 벽보를 가리키며)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저는 집에서 아이들에게도 ‘상대방에게 피해주지 않기’를 강조합니다."

-대학시절엔 공부와는 담을 쌓은 낙제생이었다지요.벤처창업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학교 다닐 때는 많이 놀았습니다.그냥 친구들하고 어울리기를 좋아했지요.졸업할 무렵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고 정신을 차렸고,직장에 들어가서 열심히 했습니다.

그때 만든 좌우명이 ‘이왕 할 일이면 최선을 다하고,이왕 살 거면 1등을 하자’입니다.말단 직원으로 일하면서 무선통신기기 시장이 전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창업을 결심했습니다.돈을 벌겠다기보다는 내 손으로 유용한 것을 만들어보고 싶었읍니다."

-창업 당시 세웠던 목표대로 회사가 커가고 있나요.
"예측했던 것보다 덩치가 더 커졌지요.40세가 되기 전에 매출 1천억원을 달성하면 회사 키우는 재미에 빠져 기업가의 길을 가고,아니면 쉬고 싶은 마음도 생길 나이여서 그냥 부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요.올해 매출이 3천억원선이니 목표는 웬만큼 이룬 셈이지요."

-성공 요인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글쎄요.그냥 매사가 절박하다고 생각하고 목숨을 걸다시피 열심히 했다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지요.물론 그 성공에는 저 뿐 아니라 구성원(임직원) 과 금융기관·대리?ㅗ苾쨩?등 주변의 도움이 컸습니다."

-개인적으로 돈도 많이 벌었지요.
"세어 봐야 아는데.(갑자기 전자계산기를 두드리는 척하면서) 5백-6백억원 정도일 겁니다.대부분 주식이고 집은 2년 전에 회사근처에 아파트(55평) 를 마련했어요."

-최근 벤처산업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후배 벤처인들에게 충고해 줄 얘기가 있다면.
"아직 나이도 젊고...감히 말할 계제가 아닙니다.난 내 것만 열심히 할 겁니다.사람 만나고 인적네트워크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보다 사교를 중요시하면 곤란하지요.기본이 중요합니다.벤처는 기술로 승부해야 합니다.밖에 눈돌리지 않고 일만 열심히 할 겁니다."

-그래도 벤처가 우리 경제의 희망임에는 변함이 없는만큼 활기를 되찾아야겠지요.
"정부의 벤처정책은 과거보다 훨씬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열린 사회’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그동안 소외 계층이 기득권층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시에 합격하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지금은 벤처라는 꿈이 만들어졌습니다.지연·학연·혈연 등으로 얽혀 있는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은 이런 인연 없이는 누구도 쉽게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벤처는 그런 벽을 허물었죠.일부 계층이 독점하던 산업 자본을 다양한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침 취업시즌인데,사람 투자에 심혈을 기울인다고 들었습니다.사람을 뽑을 때 어떤 점을 보는지요.
"우선 경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그동안 어떻게 일했는지 보는 거죠.다음으로 일에 대한 근성입니다.근성이 있어야 실수가 적습니다.회사에 대한 태도도 중요하지요."

-연초에 전문경영인을 다수 영입했는데,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이제는 전문화된 경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박정대 사장을 모셔올 때 삼고초려까지 했습니다.

LG에서 정보통신 대부(代父) 로 있던 그 분은 요즘 대기업에서 30여년간 일한 완숙한 경험을 팬택 경영에 쏟고 있습니다.올해 55세인데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계신다고 해요.

삼성이 먼저 쓴 ‘인재 제일’이라는 게 사실은 우리의 경영이념입니다.얼마전 삼성의 임원을 모시려고 했습니다.여러 사정으로 나중에나 합류할 예정이지만,그 분에게 삼성이 왜 1등을 하는지 배우고 싶었어요.

제 옛 직장인 맥슨전자에서 총괄 임원을 하셨던 분도 감사로 모셨습니다.제게 잘해 주셨던 선배에게 은혜도 갚고,맥슨이 왜 망했는지 배우기 위해서죠."

-부회장으로 물러앉은 게 너무 빠르지 않습니까.
"경영자 학과목에 국어·영어·수학이 있다면 저는 국어밖에 몰라요.다른 과목은 전문가가 해야 합니다.능력이 없으니까 빨리 비켜 주어야죠.맛揚繭箚?하고 다니기엔 아직 젊어 부회장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개인적으론 내년부터 일을 더 줄이고 재충전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1-2년 정도 미국에 유학가서 쉬면서 책도 보고 여행도 하고 싶어요.가족에게 서비스도 하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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