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이물질 섞어 수입하면 엄청 싸진다? 타피오카 전분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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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 기자

13일 오후 경기도 포천의 Q제분공장 작업장에선 태국에서 갓 수입한 타피오카 전분(녹말)을 선별기에 넣어 전분에서 이물질을 걸러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1t 가량의 타피오카 전분에서 이물질을 거르는 작업엔 직원 3명이 동원됐고 1시간10분이 소요됐다. 이 공장 직원은 “수입 타피오카 전분에 말토덱스트린·정제소금 등 이물질이 11.5% 이상 섞여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며 “이물질을 거르기 위해 인건비·전기료 등 비용을 써가며 ‘불필요한’ 작업을 한다”고 전했다.

 Q공장은 걸러낸 이물질을 비료나 사료공장에 보내 재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 봤지만 다들 비료·사료의 원료로 사용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타피오카 전분에서 추출해 낸 이물질은 폐기물로 버려졌다.

 이곳 직원은 “내다 버리는 양이 만만찮아 환경에 미치는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며 “전분에서 이물질을 걸러내는 비용도 결국은 소비자 가격에 전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타피오카(tapioca) 전분은 카사바(cassava, 돼지감자)란 남아메리카 원산 식물의 덩이뿌리에서 얻은 녹말이다. 태국·베트남·캄보디아 등 동남아에서 주로 수입되며, 밀·옥수수 전분보다 찰기가 뛰어나 일부 빵·도넛·라면 등에도 들어간다. 냉면·튀김·막국수·칼국수 등에도 사용돼 수요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수입업자들은 타피오카 전분에 말토덱스트린 등 이물질을 일부러 섞어 7500t 가량을 국내에 들여왔다. 그냥 전분 채로 수입하면 관세가 455%에 달해 이를 회피하기 위해 이물질을 고의로 넣어 조제(調製) 타피오카 전분으로 바꾼 것이다. 타피오카 전분에 이물질 혼합→수입 통관→이물질 제거 등 세 단계를 거치면 관세가 8%로 대폭 낮아진다.

 조제 타피오카 전분을 만들기 위해 이물질로 주로 사용되는 말토덱스트린은 값싼 다당류로 특별히 유해물질은 아니다. 정제 소금엔 혈압 상승의 주범인 나트륨이 포함돼 있다. 또 조제하는 도중 다양한 이물질이 섞일 수 있으며 이들 중 일부가 타피오카 전분에 남아 국민건강에 위협을 줄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한국곡물제분공업협동조합 박병섭 이사장은 “타피오카는 우리나라에서 재배되지 않는 작물이므로 관세율이 낮은 양허관세(亮許關稅, 다자간 협상을 통해 국제적으로 공인된 관세)로 수입돼도 국내 농가 피해는 사실상 없다”며 “식용 타피오카 전분에 양허관세(9%)를 인정할 경우 ㎏당 수입원가가 3500원에서 650원으로 떨어져 냉면·튀김·빵 원가를 낮추는 등 물가안정에 기여할 뿐 아니라 굳이 이물질을 넣어 수입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세의 본래 취지는 국내 산업을 보호하자는 데 있는데 타피오카 전분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소비자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타피오카 전분은 공업용으론 이미 양허관세가 허용돼 있다. 그러나 식용으로 수입될 때는 양허관세 적용을 받지 못한다.

 올 초 농림수산식품부가 주관한 한·아세안 FTA 관련 회의에선 전분당협회가 타피오카 전분에 세율이 낮은 양허관세를 적용하는 것을 반대했다. 이 단체의 회원사는 옥수수 전분 등을 생산·판매하는 회사들이어서 값싼 타피오카 전분이 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지난해 약 1000t의 메밀가루가 이물질을 고의로 섞은 상태로 국내에 반입됐다. 역시 높은 관세를 물지 않기 위해서다. 개중엔 메밀가루를 고의로 조제하거나 볶은 상태로 수입한 대기업 D사 물량도 포함돼 있다. 볶은 메밀가루를 수입하면 낮은 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시판에도 유리하다고 한다. 메밀가루는 원래 흰색인데 많은 소비자가 메밀은 약간 검은 색깔을 띠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어서다. 메밀 고유의 향·맛을 유지하려면 가루 상태로 수입해선 곤란하다. 가루를 낸 뒤 이물질을 섞거나 볶아 수입한 메밀가루론 냉면 등의 참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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