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으로] 교장 집에서 나온 5만원권 17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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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에 있는 A교장의 별장. 건물 외벽을 대리석으로 치장했고 앞마당은 소나무 조경이 잘 돼 있다. [김성룡 기자]

검찰은 지난해 4월부터 1년 가까이 A교장에 대한 비리 의혹 수사를 벌였다. 수사 기록도 수천 페이지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올 2월 초 A교장의 자택과 학교재단 행정실을 압수 수색한 검찰은 교장 자택에서 5만원권 17억원을 발견했다. 압수 수색 당일 A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비자금으로 추정될 수 있는 17억원이 나왔는데도 구속 영장을 재청구하지 않았다. 결국 검찰은 지난 3월 5일 A교장에 대해 11억원 횡령과 배임 수재 혐의만 적용해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다.

 취재팀이 입수한 검찰 공소장에는 A교장이 11억원을 횡령한 사실은 밝혔지만 이를 개인적으로 쓴 부분은 나오지 않는다. 횡령한 돈 모두 2009년 사망한 설립자(전 이사장)와 그 유가족들에게 용돈이나 생활비 조로 주거나 일부는 학교 급식업자에게 줬다는 것이다. 결국 A교장이 횡령은 했지만 개인적 이득을 취한 것은 없다는 게 수사 결론이다. 전·현직 교직원들이 “검찰이 A교장에게 오히려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며 반발하는 이유다.

특히 수사 과정에서 비자금 계좌로 확인된 전직 교장들의 17개 계좌와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한 해당 은행에 대해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도 공소장에 포함하지 않은 부분이 의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두 전직 교장의 계좌는 개설된 지 오래된 것으로 공소시효가 지나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그중 한 명의 비자금 계좌는 2008년까지 거래된 흔적이 나온다. 또 그 밖의 다른 전·현직 교장들의 명의가 도용된 비자금 계좌가 있을 가능성이 큰 데도 불구하고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어떻게 일일이 다 수사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설령 공소시효가 지났다 하더라도 비자금 계좌로 이용된 중요한 단서인 만큼 철저히 파헤쳤어야 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키 어려운 대목이다. 또 비자금 조성이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수사 대상 시기를 2009년 4월(설립자 사망) 이후로 제한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A교장이 속한 학교재단 산하 5개 교육기관의 전체 학생수는 5200여 명이고 교직원도 400여 명에 이른다. [김성룡 기자]

검찰은 비자금 조성 경위와 사용처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역시 공소사실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검찰 관계자는 “진술만 가지고 명백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기소할 수 있느냐”고 해명했다. A교장의 지시로 비자금 조성에 간여한 전직 교직원의 경우 10여 차례나 검찰에 출두해 진술했지만 수사 성과는 없었다. A교장의 카드 결제 대금이 비자금에서 나온 것이라는 증언도 무시됐다.

압수 수색이 수사 착수 10개월 뒤에야, 그것도 구속영장이 청구된 날 이뤄진 점도 의문이다. 교직원들은 이미 수사 초기에 A교장이 증거인멸에 들어갔다고 증언한다. 대검 중수부장 출신 변호사는 “압수수색으로 결정적 증거물을 확보한 뒤 이를 근거로 영장을 청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이 사건의 경우 압수수색이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꼭 수사 초기에 압수 수색을 하는 건 아니다”라며 “현금 다발을 비롯해 여러 정황 증거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또 “17억원에 대한 추가 수사 진행 여부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으며, 재판 과정을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전·현직 교직원들은 “어려운 입장인데도 검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해 왔는데 이런 수사 결과를 내놓다니 이해할 수 없다”며 “지금이라도 제기되는 여러 의혹에 대한 철저한 추가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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