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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할 수 있다”며 날 괴롭히는 것은 나 자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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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128쪽, 1만원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 있다’는 말로 이 책은 시작한다. 저자는 한국 출신의 재독 철학자 한병철(53)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 교수. 그가 볼 때 이 시대에 만연된 질병은 우울증이다. 시대적 증상의 원인으로 피로사회가 지목됐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1926~84)는 근대 자본주의의 특징을 ‘규율사회’로 규정한 바 있다. 정신병원·감옥·군대·공장 등의 감시체계는 규율사회를 뒷받침하는 핵심적 제도로 간주됐다.

 타인에 의한 규율과 강제가 현대 사회를 작동시키는 원리라는 것이 푸코의 주장인데, 한병철이 볼 때 푸코의 규율사회는 20세기까지의 특징일 뿐이다. 21세기는 ‘성과사회’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규율사회에서 피로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한병철은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다.

 푸코가 본 과거의 사회는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는 부정과 금지의 명령이 지배적인 사회였다. 이와 달리 성과사회는 “너는(나는) 할 수 있어”라는 긍정의 정신이 최상의 가치로 부각된다. 아무도 규율을 강제하지 않지만 스스로 성과를 내기 위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하는 사회로 현대인의 일상을 묘사하면서, 그 속에서 사는 인간을 성과주체라고 명명했다.

 성과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성과주제는 피로할 수밖에 없다. 성과사회는 피로사회의 또 다른 이름이다. 현대사회의 문제 징후를 저자는 긍정성의 과잉이 초래한 성과사회, 혹은 피로사회와 우울증이라는 용어로 포착해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피로사회는 자기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2010년 독일에서 출간돼 화제를 모은 바 있는데, 2012년 한국사회의 현실과도 부합되는 면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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