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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의 ‘여자란 왜’] 와우, 백치미인이 환경운동? 의외성에 점수 주는 사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6면

임경선 칼럼니스트
『어떤 날 그녀들이』저자

한번은 별생각 없이 아이의 소풍김밥을 쌌던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가 ‘와, 의외네요! 좋은 엄마시군요!’ 같은 호감 반응을 받은 적이 있다. 기존의 이미지 때문에 김밥전문점에 들러 대충 사서 보낼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들보다 내가 더 놀랐다.

 여자들에 대해서는 ‘그럴 줄 알았는데 이렇더라’식의 의외성에 사람들은 점수를 후히 준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개방적이고 드세 보이는데 알고 보면 의외로 여리고 착한 구석이 있다’ 같은 것. 그러다 보니 방송에 보이는 ‘수퍼우먼’들은 자신의 여성적·모성적 면모를 한껏 부각시키는 장면을 빠짐없이 등장시킨다. 마치 ‘그래도 여자로서의 책임과 행복이 가장 소중해요’라는듯 말이다. 너무 바빠 가족들 저녁밥을 못해 먹여 미안해하지만 가사도우미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듯 화면에서 비켜나 있다. 내 돈 써서 가사도우미 쓰는 걸 왜 숨겨야 하는지…. 항간의 ‘개념녀’ 딱지 붙이기 유행도 같은 선상의 부추김이다. ‘백치녀’의 이미지를 가진 여자들이 돌연 환경·애국·양성평등과 정치적 이슈 등에 관심을 가지는 발언을 살짝 흘리면 꽤 쉽게 개념녀로 ‘등극’된다. ‘어? 네가 원래 그런 애였어?’라는 식의 반응이 이어지는 것이다.

 자고로 관객이란 본디 자극과 안도감을 동시에 바라는 변덕스러운 욕심쟁이들이라 쳐도 이 현상이 유독 여자들에게 적용되는 건 유감스럽다. 이분법을 통한 단순화를 시켜놔야 그걸 두고 이러쿵저러쿵 대상화하기 편해서가 아닐까 싶어서다. 가령 선입견을 깨더라도 예상 가능하게 깨줘야지, 선을 벗어나면 관객으로선 감당이 안 되니 바로 또 뭇매질에 들어가기 쉽다. 참으로 여자란 씹히기 쉬운 존재. 이러니 머리 좋은 여자들은 과하게 튀지 않으면서도 적절히 차별화되는 미묘한 선만 본능적으로 체득해 갈 뿐이다.

임경선 칼럼니스트·『어떤 날 그녀들이』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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