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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LP음반

중앙일보

입력

1990년대 초반에 군대를 다녀온 음악팬들은 많은 혼란을 겪었다. 메탈리카.메가데스.슬레이어.앤스렉스 등 스래쉬 메틀 4인방의 인기는 가고 너바나.펄잼.앨리스 인 체인스.사운드가든의 그런지 4인방이 급부상했다.

신승훈.변진섭.박학기 등의 발라드가 주도하던 가요 역시 서태지.듀스로 대표 주자가 바뀌면서 레코드샵에 가서 살 판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LP에서 CD로의 급격한 변환이었다. TV.신문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 미지의 물건이 일반화한 모습에 이들은 음악 매니어로서 갈 곳을 잃었다.

이러다 보니 요즘 어린 친구들 가운데는 LP나 턴테이블을 본 적도 없고 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보다 일찍 CD가 자리를 잡은 미국.일본 등의 대형 음반 시장선 최근 몇년 사이 LP의 인기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복고와 유행의 리바이벌이 활발해졌다. 라운지(Lounge).리트로(Retro).올드 스쿨(Old School)이라는 명칭과 함께 복고풍 음악들이 다시 인기를 얻거나 샘플링 작업을 통해 요즘 음악으로 변모하는 예가 늘어났다.

둘째, 왕성한 DJ 문화다. 90년대 중반 이후 젊은이의 라이프 스타일을 대변하면서 힙합.테크노 등의 인기를 주도했다. 최근 선진국에선 턴테이블이 기타의 판매고를 앞섰다는 기록도 나올 정도다.

셋째, 콜렉터들이 새롭게 형성됐기 때문. 미국 경제의 호황으로 주머니가 넉넉해진 음악 매니어들이 오래된 레코드를 사모으면서 일부 LP는 공급이 달리는 현상도 일어났다.

그동안 LP의 가치가 무시돼온 국내에서도 최근 몇몇 젊은 DJ를 통해 LP의 존재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지난달 선보인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의 '180g Beat' 는 대표적인 LP 리바이벌의 산물. 솔과 재즈 고전 LP를 샘플링해 만든 이 힙합 음반은 CD와 함께 3장짜리 LP로도 만들어졌는데 국내 음반시장에서 5년만에 처음있는 일이다.

오랜 세월 LP를 만져온 간판 DJ들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나이트 클럽용 리믹스 음악을 만들어온 믹스 팩토리는 댄스 음악을 꾸준히 LP로 만들어 주변 DJ들에게 나눠주고 있으며, 테크노 DJ의 대부인 엉클이 운영하는 레코드 샵에서는 테크노 LP가 꾸준히 거래되고 있다.

또 이색 사이트를 통해〈로봇 태권V〉등 만화 영화 주제곡 등을 담은 LP들이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LP의 활성화는 몇번 듣고 이내 버려지는 요즘 대중음악의 가치를 조금은 올릴 수 있는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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