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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수입품점 "대문 닫는다"

중앙일보

입력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수입품 전문상가가 설 땅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20여개나 되던 수입품 상가가 한두해 전부터 하나둘씩 없어져 최근 10개만 남았다.

남풍.영창.연세.퇴계로.가네트 등의 수입품 상가들이 액세서리.의류상가로 바뀌었고 보람수입상가 2층은 '캐릭터 월드' 라는 캐릭터용품 상가로 변신했다.

본동수입상가는 1백30개 점포 가운데 20개만 남았고, 나머지 공간은 셔터를 내린 채 재고 창고로 쓴다. 삼익지하수입상가는 액세서리 상가로 바꾸기 위해 지난달부터 상인들을 모으는 중이다.

50년 가까운 전통으로 규모도 국내 최대를 자랑하던 남대문 수입상가가 이처럼 급속히 쇄락한 것은 여러 요인이 겹쳤기 때문이다.

백화점.할인점.패션몰 등 대형 유통업체에 속속 들어선 수입품 매장들이 손님을 빼앗아갔다.

남대문을 찾던 고소득층이 백화점의 고급매장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남대문의 주고객이던 중산층이 적어진 것도 요인의 하나다. 외환위기로 소득이 감소한 중산층이 수입품 구매를 자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수입선다변화 폐지로 수입품이 자유롭게 유통되면서 남대문 수입상가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남대문 수입상가 연합회의 박내철 회장은 "외환위기 후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손님이 격감하기 시작했다" 며 "상류층은 백화점을 찾고, 서민들은 수입품을 쓸 일이 없지 않느냐" 고 말했다.

아직 남아 있는 대형 수입상가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사정이 좀 낫다는 남대문시장 입구 숭례문수입상가 상인들도 외환위기 전보다 수입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한숨 짓는다.

숭례문수입상가 운영회의 이재량 회장은 "아직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한 수입품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지만 세상이 바뀌면서 전문수입상가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는 게 사실" 이라며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조만간 두세개 상가가 더 문을 닫을 것" 이라고 말했다.

남대문시장에 남아 있는 수입상가는 시장 입구에 있는 숭례문상가를 비롯해 C동.D동.E동.국제.남도.남대문.남일.남정.자유지하상가 등 10개 정도다.

재래시장에서 '상가' 란 한 건물 안에서 한두평 정도의 점포를 가지고 영업을 하는 상인들이 모여 있는 곳을 말한다.

때로는 한 건물 안에서도 층별로 상가가 다른 경우도 있다.

그동안 없어진 상가의 상인들은 전업을 했거나 밀리오레.두타.메사 등 신형 쇼핑몰의 수입명품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대문 수입상가에서 물건을 떼 전국을 돌며 영업을 하던 소규모 수입상(루트카)도 대부분 남대문을 떠났다.

한때 전체 매출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컸던 이들마저 뿔뿔이 흩어지면서 남대문 수입상가의 퇴조를 재촉했다.

남대문시장에 수입상가가 생긴 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께부터. 미군 면세점이나 해외 여행자들을 통해 흘러나온 외제품들을 팔기 시작하면서 시장을 형성했다.

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급신장했으나 이제는 앞날을 걱정할 정도로 위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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