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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와 친구 30년, 이래 봬도 박사랍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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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박진관 계장이 27일 부산 부산진구 당감동 당감종합사회복지관에서 보일러 순환펌프를 수리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외국어대 박진관(50) 시설관리계장은 배관·보일러 기술자다. 배관기능장·보일러 산업기사·용접산업기사 등 자격증을 갖고 있다.

 그는 주말이면 이 기술로 봉사활동에 나선다. 부산·경남지역 사회복지시설과 혼자 사는 어르신 가정을 찾아다니며 보일러를 고쳐준다.

 그는 가난 때문에 공고를 졸업한 1981년부터 보일러공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공부는 계속했다. 학점은행제로 학사학위를 받고 석사·박사 학위까지 따냈다. 경상대 대학원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도 ‘고효율 지열 시스템 도입에 관한 사례 연구’일 정도로 한평생 배관과 난방분야만 공부했다.

 “힘들게 터득한 기술로 우리 가족만 먹고살면 안돼요. 이 기술로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인터넷으로 보일러나 난방,식수 시설 고장으로 도움을 청하는 사회복지시설을 찾아낸 뒤 주말마다 차를 몰고 나선다. 주로 기술자들이 기피하는 농촌지역이다.

 경남 고성의 장애인 복지시설을 찾았을 때다. 식수가 줄줄 새고 있었다. 점검해 본 결과 펌퍼고장이 아니라 배관이 새고 있었다. 3000원 들여서 물이 새는 배관 이음매를 바꿨더니 잡혔다. 복지원측은 펌퍼 고장인 줄 알고 펌퍼만 여러 번 바꾸었던 것이다. 그는 “3000원 들여서 그렇게 고맙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연간 수백만원 들어가는 부품비는 자신의 호주머니를 턴다.

 기술봉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인 김은주(46)씨와 함께 사회복지시설의 어린이와 어르신들에게 영어도 가르친다. 2년 전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부산 당감사회복지관에서 가난한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지난해 말 이 복지관에 100만원을 기부했다. 1년간 이곳저곳 강의를 다니며 강사료로 받은 돈이었다. 그때 복지관 담당 수녀가 “올해 첫 기부자”라고 말했다. 경기가 나쁘다 보니 기부가 다 끊어졌던 것이다. 그때 그는 다짐했다. 앞으로 더 많이 기부를 하겠다고.

 박씨는 제2회 협성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돼 30일 부산시 수정동 협성연회장에서 건설기술 부문 본상을 받는다. 상금 1000만원을 당감사회복지관에 기부하기로 했다. 지난해 말 다짐을 지킬 수 있어 기쁠 뿐이다.

 협성문화재단은 박씨가 주경야독으로 여러가지 자격증을 받은 데다 영세한 설비업체의 기술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준 공로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은 경남 마산의 한 아파트 단지 방 바닥 누수현상을 놓고 5년간(2004∼2008년)의 법정공방 끝에 LH의 설계잘못임을 밝혀냈다.

 막 준공을 끝낸 아파트 단지에서 하자가 생기자 LH는 협력업체에 보수를 요구했다. 보수공사비만 수억원이 필요했다. 이 경우 대부분의 협력업체들은 손을 든다. 건설업계 구조상 약자인 영세업체가 공룡 같은 LH를 상대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협력업체의 소송을 뒤에서 지원하며 LH의 설계 잘못임을 밝혀냈다.

그는 고향 논에 비닐하우스로 만든 실험실을 차려놓고 숱한 실험 끝에 설계상 허점을 찾아냈다. 그는 이 과정을 대한설비건설협회보에 실어 다른 설비업체들도 참고하도록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씨는 영세한 전문건설업체들의 기술적인 어려움을 상담해주고 있다. 그는 “힘의 논리에 지배되는 건설업계의 풍토를 바로잡고 싶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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