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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안이한 대북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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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한국을 찾은 기회에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한 것은 잘한 일이다. 여러 점에서 현실을 직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DMZ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무장한 상태에서 가장 적대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곳이다. 이런 곳을 방문하는 것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실제로 목격하는 일도 오바마에겐 처음이다.

 백악관에만 있으면 북한과의 외교협상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가난하고 고립됐으며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약간의 식량과 에너지를 제공하면 일이 쉽게 풀릴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북한은 외교적 해결의 여유를 주지 않은 채 다음 달 로켓을 발사하겠다고 대놓고 발표했다. 불과 며칠 뒤 DMZ에 선 오바마는 북한과의 오랜 협상을 떠올렸을 것이다. 오바마는 최근 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진지하게 북한과의 외교적 해결을 추구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자신의 첫 임기가 끝나기 전에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각각 두 차례씩 겪는 첫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주먹 펴기(Unclenched Hand) 정책’은 오바마가 2009년 북한에 적용하겠다고 했던 정책이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 젊은 정치인은 북한같이 고립된 체제를 다룰 때는 주먹 대신 펼친 손을 내밀어 외교적 접근을 시도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오바마는 임기 초에 세계의 주요 문제 지역에 파견한 17명의 외교 특사 가운데 4명을 한반도에 보냈다. 대북 특사 가운데 스티븐 보즈워스는 첫 방북 때 오바마의 친서를 전달했다. 그 내용은 아직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오바마는 친서를 통해 상황 진전을 위한 모종의 약속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평양은 2009년 4월 인공위성을 발사함으로써 오바마의 뺨을 철썩 때려 버렸다.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는 주권에 속하니 국제사회에 통보만 하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걸로 여기는 모양이다. 뉴욕에서 북한 사람들과 만나 민간 차원의 대화를 해봤더니, 그들은 2009년 5월의 핵실험에 따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에는 그리 마음이 상하지 않은 걸로 보였다. 대신 그들을 진짜로 화나게 한 것은 미사일 발사 뒤 미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제재를 주도한 사실이었다. 6자회담 종결을 선언하게 하고 두 번째 핵 기폭을 촉발한 것은, 그들의 표현에 따르자면 ‘유엔에서의 이런 뻔뻔스러운 행동’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9년 핵실험 이후 오바마는 3년간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의 비협상 정책을 폈다. 북한이 건설적인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 한 미국은 북한과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정책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고위 관리에게 ‘건설적인 행동’이란 게 어떤 것인지를 물어보자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을 하지 않고 더 이상 남한에 도발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011년 초부터 오바마 행정부는 자신들의 전략적 인내를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고 북한과 재접촉을 시작했다. 북한이 더 좋은 행동을 하겠다는 어떤 징후를 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여기에는 다른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미국 선거의 해인 2012년 북한이 주요한 도발을 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둘째, 몇 년간 전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은 북한의 우라늄 재농축 프로그램을 미국이 어떻게든 통제하고 싶기 때문이다.

 2012년 2월 협상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동결 여부를 감시하기 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복귀를 허용하고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유예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불과 며칠 뒤 평양은 ‘인공위성 발사’라는 폭탄선언을 했다. 북한이 미국을 속인 것일까? 미국 협상단은 북한이 약속한 ‘미사일 발사 유예’에 인공위성 발사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을 것이다. 이전 북한과의 협상에서도 이런 대목은 포함돼 있었다. 그렇다면 미국이 북한의 기만술에 넘어간 것은 아니다. 북한은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북한은 핵탄두가 장착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가지고 미국에 접근하는 나라가 되고 싶어 한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대로 옮기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오바마는 지난 주말 DMZ에 서서 ‘북한의 어떠한 위협과 도발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처한다’는 낡은 레퍼토리만 읊조렸다. 그런 말을 하는 게 전부인가. ‘이스라엘식 선택(선제공격)’을 의논해야만 할까. 이처럼 실존하는 위협과 맞닥뜨렸을 경우 이스라엘이라면 미사일과 발사대를 파괴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했을 것이다. 미국은 뭘 해야 할까?

 2009년 북한의 미사일은 태평양에 떨어졌다. 지금까지 나타난 모든 징후를 고려하면 북한이 이번에 발사할 미사일은 더욱 성공적일 것으로 보인다. 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은 “북한은 5년 안에 미국까지 날아갈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 빠를지도 모른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오바마 정권의 북한 관련 특사

1)대북 특사 스티븐 보즈워스

 - 2009년 2월 임명
 - 전 주한 미 대사

2)북핵 6자회담 특사 성 김

 - 2009년 2월 임명
 - 전 국무부 한국과장, 6자회담 차석대표
 - 현재 주한 미국대사

3)대북제재 특사 필 골드버그

 - 2009년 6월 임명
 - 전 볼리비아 대사

4)북한인권 특사 로버트 킹

 - 2009년 9월 임명
 -전 미 하원 외교위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