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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한화·두산등 일찌감치 구조조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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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바스프 등 우량 계열사를 매각한 뒤 솔직히 서운했지요. 그러나 이제 덩치가 중요한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을 하면서 실패하면 감옥에 간다는 각오로 주력 계열사 네곳을 하나로 합쳤다" 면서 "돌이켜 생각해도 당시 구조조정을 잘 했다" 고 말했다.

'마취도 하지 않고 폐를 도려내는 심정' 으로 구조조정을 했다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젊은 시절 함께 어울렸던 동료 오너(대농 박영일.동아 최원석.삼미 김현철 회장 등)들이 그룹의 부도로 조용히 지내는 점을 안타까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한계기업의 2차 퇴출, 현대건설의 자금난, 대우자동차 부도 등으로 경제상황이 어려워지자 외환위기 직후 과감한 구조조정을 한 중견그룹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들 그룹의 회장과 임원들은 지난해 말 한때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벤처 붐과 금리 하락 속 경기가 활황 국면을 보이자 '너무 심하게 구조조정을 한 것 아니냐' '몇달만 버텼으면 알짜 계열사를 지킬 수 있었다' 는 등 불만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다시 경제가 어려워지자 스스로 기업을 팔고 계열사를 통합하는 등의 구조조정을 한 한화.효성.두산.한솔그룹 등에 그 노하우를 배우겠다는 국내외 기업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 후회한 적도 있었다〓조석래 회장은 "사장단 회의 참석 인원이 줄었지만 해마다 이익이 쑥쑥 늘어나 흐뭇하다" 면서 "스판덱스.타이어코드 등 세계적 경쟁력이 있는 품목에 역량을 집중하겠다" 고 강조했다.

한화 박종석 부회장은 "베어링이나 바스프우레탄 등 '알짜기업' 을 판 뒤 아깝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면서 "잘되는 부문을 내놓았으니까 팔렸지, 적자사업을 누가 샀겠느냐" 고 말했다.

朴부회장은 "여유자금이 생겼다고 대한생명 인수전에 나섰다가 성공하지 못했지만, 최근 경제상황을 보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 말했다.

㈜두산 전략기획본부 박용만 사장은 "당시 구조조정에 대해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두산이 너무 심하게, 과감하게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면서 "하지만 요즘은 다른 기업이 두산을 부러워하고 있다" 고 말했다.

한솔 남정우 부회장은 "전주제지 등 굵직한 계열사 자산을 매각한 뒤 외부에서 '한솔에 남은 것이 뭐냐' 고 말할 때 가슴이 아팠다" 면서 "전주제지는 자산을 팔았지만 동남아 등 시장을 얻었고, 한솔엠닷컴을 팔아 새로운 e-비즈니스 사업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고 주장했다.

◇ 본받겠다는 기업 많아〓한화그룹은 지난달 9일 창립 48주년을 맞아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각오로' 라는 외환위기 극복 사례집 6천부를 만들었다.

그동안 한화가 구조조정을 해오면서 겪은 경영진의 고민, 노조와의 갈등, 구조조정의 어려움과 위기극복 과정을 담았다.

한화 정이만 상무는 "책을 보내달라는 기업이나 대학.연구소가 많아 더 찍기로 했다" 고 말했다.

두산 이상하 상무는 "전경련이나 대한상의 회원사는 물론 한국통신 등 공기업을 상대로 구조조정 사례를 발표했다" 면서 "기업가치를 선진국 우량기업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앞으로 구조조정을 더 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신문용지 제조업체인 전주제지의 매각과정 및 노르웨이.캐나다 제지회사와 한솔 등 3개사가 각각 같은 지분을 갖고 있는 ㈜팬아시아페이퍼의 경영 방식도 외국 기업과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한솔 최재후 상무는 "견제와 균형이 조화를 이룬 팬아시아페이퍼의 경영 노하우는 3개사가 이익을 나누고 시장을 넓히는 새로운 국제 합작회사의 표본" 이라고 말했다.

효성 김충훈 전무는 "중공업.물산.생활산업.T&C 등 4개 계열사를 (주)효성 하나로 합쳐 부채비율을 줄인 구조조정 사례와 해외매각 협상 방법을 묻는 기업이 많고 강연도 하고 있다" 고 말했다.

◇ 4개 그룹의 올해 성적표〓한화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천1백%대였던 부채비율을 지난해 1백32%로 끌어내렸다.

한화 김성남 이사는 "올해 그룹 전체의 당기순이익이 5천억원에 이르고, 특히 23개 전 계열사가 연말에 흑자로 전환할 것" 이라고 내다봤다.

계열사 통합.청산.매각 등 몸집을 줄이기 위해 총력전을 편 효성도 올해 사상 최대인 8천1백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두산도 올해 5천6백억원의 영업이익에, 지난해 1백59%였던 부채비율은 1백33%로 낮아질 것으
로 전망했다.

핵심사업을 팔아 3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확보한 한솔은 현재 1백40%인 부채비율을 연말까지 1백%로 낮출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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