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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딸' 김미루 "아버지가 지은 이름때문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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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발가벗은 젊은 여성이 돼지 두 마리와 뒹군다. 돼지는 그가 먹고 있는 고구마·마 등에 관심이 많은지 자꾸 코를 들이민다. 장소는 미국 마이애미의 한 갤러리. 유리창 밖으론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 그의 ‘돼지 퍼포먼스’를 지켜봤다. 지난해 말 사진가 김미루(31)가 벌었던 ‘나는 돼지를 좋아하고, 돼지는 나를 좋아한다(I Like Pigs and Pigs Like Me)’ 퍼포먼스다.

 김씨가 29일부터 4월 30일까지 서울 소격동 트렁크갤러리(02-3210-1233)에서 개인전 ‘돼지,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연다. 당시 퍼포먼스 영상을 공개하고, 미국의 돼지사육장을 다니며 찍은 사진도 내놓는다.

 김씨의 국내 개인전은 두 번째. 그는 3년 전 대도시의 버려진 공간을 주목한 ‘나도(裸都)의 우수(憂愁)’ 시리즈를 선보였다. 뉴욕의 하수구, 버려진 설탕공장 등을 찾아 다니며 그 안에서 무방비 상태로 있는 자신의 몸을 담았었다. 26일 김씨를 만났다.

 -왜 돼지인가.

 “의대 진학을 준비하면서 해부학 시간에 돼지 태아를 해부했다. 돼지를 통해 인체를 배운다는 점이 놀라웠다. 해부학적으로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 돼지였다. 살색도 비슷하지 않나.”

 -왜 벗었나.

 “동물도 벗지 않았나. 직접 살을 맞대니 보는 이들도 전신으로 그 느낌을 공감할 수 있을 거다. 이번에는 피부에 더욱 주목했다. 내가 어떻게 바깥 세상과 만나는지 하는 문제 말이다.”

 -전시 제목은 어떤 뜻인가.

 “‘돼지, 고로 존재한다(The Pig That Therefore I Am)’라는 제목은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의 책에서 인용했다. ‘동물, 고로 나는 존재한다(The Animal That Therefore I Am)’이란 대목이었다. 데카르트는 일찍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다. 너무 이분법적이지 않나. 데리다는 인간의 이성과 그 물리적 존재가 별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동양적인 사유방식이다.

 “어찌 보면 그렇다. 나 역시 공감한다. 돼지처럼, 살아있기 때문에 우린 존재한다. ‘나는 돼지를 좋아하고 돼지는 나를 좋아한다’는 독일의 요셉 보이스(1921∼86)가 갤러리에서 코요테와 함께 여러 날을 보낸 퍼포먼스에서 따왔다. 그의 코요테가 미국의 상징이었다면, 나의 돼지는 돼지 그 자체다.”

 -돼지와 생활해보니 어떻던가.

 “나는 계속 치우고, 돼지들에게 물 주고, 먹이를 줬다. 어떻게 해도 인간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부친(도올 김용옥 원광대 석좌교수)의 후광이 크다는 비판도 있다.

 “별로 신경 안 쓴다. 나 자신을 그렇게 안 보니까. 누구의 딸이라는 것, 해외에선 잘들 모른다.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셨다. 미륵의 ‘미(彌)’, ‘누추하다’의 ‘루(陋)’, 점점 겸손해지라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점점 더 누추한 곳을 찾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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