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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역사가 이정희를 거부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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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최대 실패자는 유시민 경기지사 야권 단일후보였다. 그의 낙선에서 나는 역사의 비상한 의미를 느꼈다. 선거 20일 전 그는 천안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폭발에 의한 침몰로 보지 않는다. 현재까지 어뢰설·기뢰설 온갖 것들이 억측과 소설이다.” 이때는 이미 여러 정황으로 ‘외부 공격’이 드러난 때였다. 외부 폭발이라는 국제조사단의 잠정 결론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언론과 전문가의 분석을 소설로 매도했던 것이다.

나는 ‘역사가 유시민을 거부한 이유’라는 글을 썼다. 경기도에는 육군 4개 군단, 해군 함대, 해병대 사단, 공군작전사령부와 전투비행단이 포진해 있다. 군 지휘관과 검·경 책임자, 도의회 의장과 교육감, 그리고 한전·KT 책임자들이 통합방위협의회를 구성한다. 의장은 도지사다. 유사시에 의장은 “소설”이라 하고 군 지휘관들은 “사실”이라고 하면 국가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래서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역사의 신(神)이 ‘대한민국의 숨통지대’로부터 그를 멀리 떼어놓은 것”이라고 나는 썼다.

이번 선거에서도 역사의 비상한 작동이 있는 것 같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야권 단일후보직을 잃은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급진적인 진보·좌파를 이끄는 지도 조직이다. 북한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다. 이정희는 육체적으로는 연약한 43세 여성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그런 세력을 상징하는 기수다. 당선되면 그는 국회에서 민주당과 ‘의회연대’를 이루는 한 축이 될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국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됐다. 보좌진의 실수로 그렇게 됐다. 이는 운명의 무슨 작용인가.

2010년 8월 이정희 민노당 대표는 라디오에 출연했다. 청취자가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고 물었다. 이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역사적인 논쟁들이 있습니다. (중략) 그 문제는 좀 더 치밀하게 생각해 나중에 다시 답을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정당 대표가 6·25 침략자를 규정하는 걸 거부한 것이다. 그로부터 1년7개월이 지났다. ‘치밀하게 생각한 결과’ 이 대표의 답은 무엇인가.

이 대표의 이런 태도는 자신의 인생과도 맞지 않는다. 어제 그는 자전적 에세이『내 마음 같은 그녀』를 펴냈다. 그는 11살 연상의 남편 심재환 변호사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동지애를 적어놓았다. ‘부부연대’의 중요한 근원은 가난이었다. 이정희도 가난했지만 심재환이 더 가난했다. 그런데 심재환을 가난으로 몰아넣은 건 북한의 6·25 침략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황해도 개성 부잣집에서 자랐다. 스무 살 무렵 서울 외삼촌 집에 다니러 왔다가 38선이 막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북한이 일으킨 전쟁은 이정희의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간난(艱難)을 새겨놓았다. 그들의 시련은 수많은 이산가족과 피란민이 겪은 시련과 똑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정희 부부가 6·25 가해자 북한을 두둔하고 있다. 부인은 6·25의 침공 주체를 얼버무린다. 남편은 민변(民辯) 통일위원장 시절 ‘KAL기 폭파범 김현희’는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3년 방송 인터뷰에서 그는 “완전히 가짜다. 이건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르지만 절대로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고 우리는 단정 짓는다”고 말했다.

어제는 천안함 2주년이었다. 진보·좌파 세력은 아직도 가해자를 지목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제1 야당이라는 민주당은 성명에서 북한이 폭침시켰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뢰가 발견됐는데도 이러니 하늘이 흐느낄 일이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에 묻는다. “어뢰도 조작인가. 조작이라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 누가 가져다 놓았나.”

이정희에게서 나는 2년 전 유시민을 무대에서 끌어내렸던 국가안보의 영령을 본다. 그것은 46인일 수도 있고, 한주호 준위일 수도 있다. 이번 선거에서 통합진보당이 몇 명이 당선될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국가정신이 살아있는 한 적어도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 모르겠다는 이가 의회 지도자가 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