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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 다변화 안 하면 중국에 말려들 위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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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호 14면

“중국에 관심을 갖는 건 좋지만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 60년 가까이 중국을 공부한 이채진(76·사진) 미국 클레어몬트 매케나대학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는 한국 학계보다 미국에서 더 유명하다. 그가 1996년 펴낸 중국과 한국(China and Korea) 등 여러 권의 저서가 하버드대학과 스탠퍼드대학 등 명문대학의 교재로 널리 쓰인다. 미국에 오래 살아선지 중국을 보는 시각이 국내 학자들에 비해 중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잠시 한국에 들른 그를 지난 16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중국 전문가 이채진 미 클레어몬트 매케나大 명예교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최근 폐막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정치개혁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의 위기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나.
“원 총리 발언은 일종의 충격요법이다. 내년에 물러나는 입장에서 강하게 말한 것이다. 원자바오를 비롯한 개혁파는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선 모종의 정치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저변엔 원 총리를 비롯한 대다수 지도자들의 불안감이 깔려 있다. 인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지도자가 아니라는 한계 때문이다. 중국에 대해 미국의 수전 셔크는 ‘연약한 초강대국(fragile superpower)’, 토머스 크리스텐슨은 ‘자신있는 불안감(confident insecurity)’이란 이율배반적 용어를 이용해 설명한다. 중국이 국제적으론 자신감이 넘치지만, 대내적으로는 불안하다는 말이다.”

-중국이 말하는 민주와 서방이 생각하는 민주는 어떻게 다른가.
“중국 지도자들은 늘 모든 문제를 중국식으로 처리하겠다고 말한다. 중국식 사회주의, 중국식 민주주의란 모두 중국의 조건에 부합하는 정치체제를 말한다. 중국 지도자들은 절차적 민주주의는 중요시하지 않는다. 절차야 어떻든 경제를 성장시켜 실질적으로 인민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면 그것이 곧 민주주의라 보는 것이다.”

-지난해 중국의 최대 사건은 광둥성 우칸(烏坎)에서 벌어진 농민 시위였다. ‘아랍의 봄’처럼 ‘중국의 봄’도 올 것 같은가.
“중국인은 매우 실용적이다. 어떤 문제건 자신의 이익에 합당한지를 우선 고려한다. 경제를 발전시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꼭 서구식 민주주의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고 반문한다. 토크빌은 ‘경제적 빈곤이 반드시 혁명을 유발하는 건 아니며, 독재자가 개혁을 시도했을 때 가장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고 말했다. 독재자가 천재가 아닌 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중국도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민주주의 욕구가 커질 것이다.”

-중국의 공산당 일당체제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예측하기 어렵다. 군소 당파가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일당 지도체제를 포기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의 낙마를 어떻게 봐야 하나.
“첫째, 보수파와 개혁파 사이의 정책노선 대립이다. 둘째, 올가을에 있을 당 대회에서의 당권을 둘러싼 알력이 표출된 것이다. 셋째, 인간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보시라이는 독불장군이다. 집단지도체제 속에서 협력을 해야 하는데 돌출행동을 했다. 이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올해는 중국 지도부 개편과 미국 대선이 있다. 향후 미·중 관계를 전망한다면.
“선거 캠페인 기간 중 미국 여론은 반중(反中) 일색이다. 여기에 공화당 보수진영이 영합하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는 ‘완벽한 실용주의자(consummate pragmatist)’다. 중국에 대해 강온 정책을 균형 있게 구사하고 있다. 공화당 후보 중 밋 롬니가 대선주자가 돼 11월 대선에서 당선된다 해도 오바마의 대중 정책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롬니 또한 매우 실용적이어서다. 개인적으로도 중국에 대해 호의적이다. 현재는 공화당 우파의 지지를 받기 위해 전략적으로 중국을 비난하는 것에 불과하다.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국익을 위해 바뀔 것이다.”

-한국은 외교·안보적으로는 미국에,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가깝다. 미·중 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기면 한국은 난처해진다. 한국은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하는가.
“군사와 경제적으로는 대미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것이 한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중국과는 이어도나 탈북자 북송 문제 등에 있어 여론이나 감정에 너무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한국 정부와 지도자들은 좀 더 거시적으로 중국 문제를 다뤄야 한다. 대중 외교는 ‘조용한 외교’가 필요하다.”

-올해는 한·중 수교 20년이지만, 탈북자·이어도 문제로 축하 분위기가 뜨질 않고 있다.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 체제이고, 또 한국인이 매우 감정적이라 생긴 문제다. 불편한 한·중 관계는 한국의 이익에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 차원에서는 여론의 고려를 지양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 무역과 경제는 다원화하고 다변화해야 한다.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건 위험하다. 중국은 앞으로 경제력을 기반으로 군사력을 증강하면서 두 가지 힘을 외교정책 수단으로 쓰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역시 북한과 마찬가지로 대중 의존도가 커질수록 중국에 말려들기 쉽다.”

-2010년 센카쿠(尖角) 열도(중국명 釣魚島)를 둘러싼 중·일 분쟁으로 중국 위협론이 강화됐다. 중국의 부상이 전쟁 같은 충격적 사건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나.
“중국은 영토나 국경 문제, 그리고 국가이익과 직결되는 문제와 관련해선 소규모의 군사행동을 취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우방이나 미국의 이익에 직결되는 지역, 즉 한국·일본·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에는 신중을 기할 것이다. 중국은 영리하고 현명하다. 과거의 베트남 침공과 같은 무리수는 두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30여 년간 고도성장을 거듭해 G2(미국+중국)로 부상했다. 중국의 경제 성장세는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
“원자바오 총리의 말처럼 제12차 5개년 계획 기간(2011~2015년) 중 7.5% 정도의 성장은 가능할 것이다. 단 중국이 2030년까지 미국을 추월할 수 있을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이끌 중국의 5세대 지도부가 향후 국내적으로 부딪칠 가장 큰 어려움은.
“지방정부의 과도한 채무, 거대한 국유기업의 구조조정, 지속적인 자원확보 등 세 가지 문제를 꼽을 수 있다.”

-김정일 사망과 김정은 세습 이후의 북·중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나.
“중국은 1992년 한국과 수교한 이후 남북한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쳤다. 이제는 달라졌다. 완전히 북한을 감싼다. 북한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중국이 도와주지 않으면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사람들은 중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서로 이익이 있으니까 협력할 뿐이다. 김정은이 대미 관계를 개선하려는 목적에는 대중 의존도를 완화하려는 측면도 있다. 중국은 북한 정권이 연명할 정도로만 도와준다. 북한의 불만이다. 장기적으로 지탱하기 어려운 구조다.”

-한국민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중국에 관심을 갖고 중국어를 배우는 건 좋다. 그러나 환상이나 낭만을 품어선 안 된다.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李如松), 대한제국 시기 위안스카이(袁世凱),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펑더화이(彭德懷)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균형 잡힌 대중관(對中觀)이 필요하다. 선린외교는 중요하지만 국가 간 관계는 국익을 둘러싸고 언제나 대립의 소지가 있다. 한국 정부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정리=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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