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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나인스 게이트'

중앙일보

입력

서양 예술에서 악마는 친숙한 소재다. 자연의 선한 본성을 밋밋하게 드러내는 천사와 달리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욕, 인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초능력, 신에 대한 불경스런 도전 등을 상징해 매력적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괴테의 파우스트 박사가 대표적 보기다.

그러나 우리에겐 어쩐지 정서가 잘 맞지 않는다. 무슨 얘기인지는 알겠으나 선뜻 그 분위기에 젖어들지 않는다. '차이나 타운' '테스' '비터 문' 등을 연출한 폴란드 출신의 로만 폴린스키 감독의 '나인스 게이트 (원제 The 9th Gate)' 도 그렇다.

시종일관 어두운 화면, 섬뜩한 연쇄 살인사건, 음산한 배경음악 등이 관객을 바짝 졸여놓아 제법 긴장감 넘치는 호러 한 편을 감상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뿐 각별한 여운이 남지 않는다. 서양인과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성장한 때문일까. 지식으로 아는 악마와 마음으로 느끼는 악마는 그만큼 상이한 것이다.

영화는 고서적상 딘 코소(조니 뎁)가 악마 관련 도서수집가 보리스 볼칸(프랭크 랑겔라) 의 의뢰를 받고 악마가 저술했다는 '어둠의 왕국과 아홉개의 문' 이라는 책의 세 판본을 대조하면서 시작한다. 코소는 미국에서 포르투갈, 그리고 파리를 여행하면서 세 판본의 차이를 일일이 찾아낸다. 그가 책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관계자들이 하나 둘 피살되며 공포 분위기가 고조된다.

그러나 마무리가 좀 황당한 편이다. 악마의 힘을 얻어 세상을 지배하려는 볼칸이 싱겁게 죽고, 대신 코소가 별다른 설명없이 악마의 세계로 통하는 아홉번째 문을 들어가며 끝난다.마지막 테마곡을 성악가 조수미가 불러 화제가 됐다. 1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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