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뒤 옷 벗을 숙대 이용태 이사장, 한영실 총장 해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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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용태 이사장(左), 한영실 총장(右)

숙명여대 재단인 숙명학원의 이용태(79) 이사장이 22일 한영실(55) 총장을 전격 해임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15년간 685억원의 대학 기부금을 재단 전입금처럼 위장해온 이 이사장의 재단 운영을 불법으로 규정해 이사장직 승인 취소(해임) 통보를 한 지 6일 만이다. 교과부가 30일 청문을 통해 이사장직 승인 취소 절차를 마무리하려 하자 소명시한이 8일 남은 이 이사장이 정면 반격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교과부는 “예정에 없던 총장 해임 안건을 긴급 안건으로 올리려면 이사 전원이 참석해야 하는데 8명 중 2명이 불참해 이사회 결정 자체가 무효여서 법적 효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교과부는 예정대로 청문을 진행해 이 이사장을 물러나게 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해임 통보를 받은 한 총장은 “이사회가 법적으로 맞지 않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하며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물러날 생각이 없다”며 집무를 계속했다. 한 총장은 2008년 8월 취임했으며 임기는 오는 8월까지다.

 이 이사장은 이날 오전 7시 서울 김포공항의 한 카페에서 이사회를 열고 총장 해임 안건을 긴급 상정해 참석자 6명(정원 8명)의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이사회는 “한 총장이 그동안 이사진에 대한 부단한 비난과 공격을 하고 이사 전원에게 퇴임 압박을 했다”며 해임 이유를 밝혔다. 이사회에는 이 이사장과 함께 교과부로부터 승인 취소된 김광석 이사를 비롯, 숙명여중·고 교장인 조미행·이돈희 이사, 문일경·정상학 이사 등 6명이 참석했다. 이 중 한 명이 출국하게 되자 공항에서 긴급 이사회를 연 것이다.

 교과부는 이 이사장이 한 총장에게 보복하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고 지적했다. 사립학교법(17조)에 따라 이사회 안건은 7일 전 이사들에게 통보돼야 하고 긴급 안건은 이사 전원이 참석해야 의결이 가능하다. 이사회는 당초 회의 안건으로 ‘비상사태 예방과 처리’ ‘총장 답변서 검토와 처리’ ‘회의록 대표 간 서명 임원 호선’ 등 3건만 공지했다. 총장 해임에 대한 내용은 통보하지 않아 명백한 위법이라는 것이다. 숙명여대 최고 심의기구인 교무위원회는 임시회의를 열어 “이사회 안건을 7일 전 통보하기로 돼 있는 사립학교법을 어겼기 때문에 이사회의 총장 해임은 잘못됐다”며 “한 총장이 정상적인 집무를 계속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이기범 교무처장은 “부당한 이사회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어 법원에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이사장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한 총장이 이사회에 책임을 떠넘기고 직무 수행을 방해했다”며 “즉각 물러나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경숙 전 총장 시절인 1998년 취임했으며 14년째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번 임기는 2014년 11월까지다.

 숙대는 술렁였다. 익명을 요구한 교수는 “며칠 후면 옷 벗고 나갈 사람이 교수들이 선출한 총장을 마음대로 해임하는 것은 블랙코미디이고 전횡’이라며 “이 이사장은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교수는 “재단과 대학본부의 갈등 때문에 10만 동문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 두 사람 모두 동반 퇴진하라”고 주장했다.

 교과부는 95년부터 2009년까지 대학에 들어온 기부금을 재단 통장으로 이체한 뒤 대학에 다시 돌려주는 방식으로 재단 전입금 실적을 부풀려온 책임을 물어 16일 이 이사장과 전·현직 감사 등 6명에 대해 승인 취소를 통보했다.

윤석만·이한길 기자

숙명학원 기부금 편법 운영 일지

- 1995년 대학 기부금 재단 계좌로 이체→전입금 전환 편법 시작
- 2009년 10월 한영실 총장 지시로 기부금 편법 운영 중단
- 2011년 3월 교수·직원·동문 등 대표로 구성된 숙명발전협의회, 법정부담금 미납 등 재단에 개선 요구
- 2011년 6월 재단 개선 요구에 재단 이사회, ‘복종의무’ 등 담긴 규칙 의결
- 2011년 7월 숙발협, 이용태 이사장에게 ‘복종의무’ 조항 철회 및 사과 촉구
- 2012년 1월 총학생회, 법정부담금 미납 등 재단에 재정 문제 개선 요청하는 내용증명 발송
- 2012년 2월 9일 숙명학원 기부금 세탁 보도
- 2012년 2월 10일 숙대 총동문회·숙발협, 이용태 이사장 사퇴 촉구 성명
- 2012년 3월 16일 교육과학기술부, 이용태 이사장 등 6명 ‘승인취소(해임)’ 통보
- 2012년 3월 22일 재단 이사회, 한영실 총장 해임 의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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