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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삼양, 라면값 9년간 짜고 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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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라면 업계가 9년 동안 가격을 담합한 사실이 적발됐다. 농심이 가격 인상 정보를 미리 알려주면 다른 업체가 따라가는 식으로 여섯 차례에 걸쳐 라면 값을 끌어올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2일 2001년 5월부터 2010년 2월까지 라면 가격을 담합한 라면업체 4곳(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에 시정명령과 총 135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업계 1위인 농심이 가장 많은 1077억6500만원, 삼양식품(116억1400만원), 오뚜기(97억5900만원), 한국야쿠르트(62억7600만원) 순이다. 농심의 과징금은 지난해 영업이익(1101억2400만원)과 맞먹는 금액이다.

 공정위는 시장점유율 70%인 농심이 담합을 주도했다고 본다. 농심은 가장 먼저 가격인상안을 만들어 업계에 돌렸다. 2008년 2월 가격인상 직전에 농심이 삼양식품에 e-메일로 보낸 자료엔 신라면, 안성탕면, 순한너구리 등 22개 제품 출고·판매 가격을 얼마씩 올릴지가 상세히 나와 있다. 이어 다른 업체도 팩스, 전화, e-메일로 가격 인상 계획을 주고받았다. 가격인상 제품의 생산·출고예정일까지 서로 미리 알려줬다. 공정위 신동권 카르텔조사국장은 “확보된 e-메일 자료만 2003~2009년 동안 340건”이라며 “가격 인상은 물론 판매실적, 홍보대책 등 민감한 내부정보까지 공유하며 담합해왔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4사는 라면제품 값을 한두 달의 시차를 두고 올렸다. 농심이 2008년 2월 20일 신라면 값을 650원에서 750원으로 올리자 3월 1일 삼양식품이 삼양라면 값을 750원에 맞췄고 4월 1일엔 오뚜기 진라면과 한국야쿠르트 왕라면 값도 같아졌다. 4개사 주력제품의 출고가와 소비자가격은 9년 동안 매번 똑같이 올랐다. 라면업계의 담합은 2010년 2월 삼양식품이 라면 값을 내리면서 깨졌다.

 후발업체의 가격인상을 유도하기 위해 농심은 ‘구가(舊價)지원’을 활용했다. 구가지원은 거래처에 인상 전 가격으로 물건을 제공하는 걸 말한다. 보통은 7~10일이지만 농심은 최장 82일까지 연장하며 가격을 올리지 않은 업체의 동참을 압박했다.

 이번 라면가격 담합은 한자리에 모여 ‘값을 얼마로 올리자’고 합의하는 식의 전통적인 담합은 아니다. 정보 교환을 통해 이뤄진 암묵적인 담합이다. 2008년 6월 시작된 공정위 조사가 4년 가까이 걸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2위 업체인 삼양식품이 공정위 조사에 협조하면서 은밀한 담합구조가 밝혀졌다. 삼양식품은 자진신고(리니언시) 제도에 따라 과징금을 최대 100% 감면 받을 전망이다.

  농심은 즉각 반발했다. 농심은 “밀가루와 기름값 인상을 고려해 독자적으로 가격을 올렸을 뿐”이라며 “담합을 하지 않았고 할 이유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뚜기 관계자 역시 “담합한 사실이 없다”며 “구체적인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야쿠르트는 “의결서를 받으면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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