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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수위 이른 사이버 성폭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여성인권 침해가 종전 오프라인(사회생활) 에서 최근 온라인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사이버 성(性) 폭력'' 이 신체적 피해를 동반하지 않는다는 안이한 인식으로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그러기엔 그 폐해가 심각하다. 실제 사이버 성폭력으로 여성들이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보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사이버 성폭력은 정보화시대에 떠오른 대표적인 인권침해 행위다. 사이버 공간상에서 발생하는 음란물 유통, 희롱과 스토킹, 욕설과 명예훼손 등 불량 이용행위는 올바른 정보통신 문화를 해치고 통신 이용을 위축시키는 폭력행위다.

특히 이성(異性) 에 대한 사이버 성폭력은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도 사이버 성폭력에 심각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이버상에서 문자로 만들어지는 가해행위가, 사회통념상 폭력이라고 이해되는 신체적인 가해행위와는 같을 수 없다는 단순한 인식 때문이다.

불쾌한 문자나 영상을 목격할 경우, 단지 컴퓨터를 끄면 된다는 식의 소극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이버 폭력은 엄청난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가져온다. 신고사례 중 하나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특정 게시판에 ''섹스 파트너 구함'' 이라는 제목으로 개인의 휴대폰 번호와 이름이 올려진 경우였다.

피해자는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하루 20~30차례나 전화를 받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전화로 직장생활은 물론 잠을 자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피해자는 피해내용이 어디에, 또 누구로부터 게시됐는지 알 수 없었으며 결국 명예훼손뿐 아니라 심리적 피해와 함께 간접적인 신체적 피해까지 보게 된 것이다.

남녀간 사이버 성폭력이 왜 발생하는가.

첫째, 이성간 상호 가치존중의 부재에 기인한다. 상대적으로 많은 남성 이용자는 현실사회의 남성 중심적 구조를 사이버상에 그대로 반영, 재현하는 것이다.

이들은 타인에게 덜 공격적이며, 타인의 요구나 필요를 배려하는 여성의 가치성향을 무시한다.

둘째, 사이버 마초(macho) 문화 형성이다. 마초란 권위적이고 공격적인 남성다움을 뜻한다.

요즘 남녀간의 친밀한 구성방식이 선호되면서 마초맨은 현실에서 점차 매력을 잃고 있다. 그러나 사이버상에서는 남성이 익명성.개방성으로 남성다움을 맘껏 누릴 수 있어 마초문화가 가능하다.

마초맨은 대화방.게시판.홈페이지.전자우편 등에서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방 제목과 대화명을 쓰고, 저속하고 과격한 언행을 통한 욕설과 인신공격으로 점철된 폭력적 언어를 사용한다. 같은 내용의 글을 반복적.무차별적으로 씀으로써 사이버 공간을 도배한다.

결국 여성이 사이버상의 피해자가 되기 쉽다. 사이버 성폭력은 이제 개인이나 소수집단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단계에 와있다. 범사회적 대책이 필요하며 불가피하게 정부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사이버 성폭력을 막자면 우선, 정부가 사업주의 관리책임을 묻는 제도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통신사업주는 남성이용자가 많다는 이유로 남성 취향에 맞는 사이트 운영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사업주에게 인터넷 정화를 주도하는 책임을 함께 지우도록 해야 한다.

셋째, 여성의 사회참여 기회를 강화해야 한다. 프로그램 개발에 여성 참여를 권장하고 사이버 폭력을 통제하는 모니터링 요원으로 여성을 적극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여성이 가진 관계지향적이고 타인을 배려하는 가치성향 등이 존중된다면 사이버 문화는 정화될 것이다.

넷째, 전사회적인 개인교육이 실시돼야 한다. ''사이버 예절'' 은 현실생활의 예절과는 다르므로 교육을 통해 습득하도록 해야 한다.

여성 이용자는 사이버공간의 상대방이 주는 정보를 정확히 판단하는 능력을 높여야 한다. 건전한 사이버 이용목적에서 벗어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개인 차원에서는 마초맨에게 절대 반응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무반응은 남성다움을 강조하는 남성의 태도를 포기시키는 중요수단이 된다.

그래도 먹히지 않는 경우엔 사이버 성폭력 피해신고센터(http://www.gender.or.kr)를 이용하기 바란다.

이경화 <교육학박사.사이버성폭력피해신고센터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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