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 밸리 전전긍긍…살생부 돌고 상장연기

중앙일보

입력

"주주 명부가 예뻐요(다수의 정.관계 인사들이 주주로 포함돼 있다). "

벤처기업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의 벤처밸리에서 떠돌던 이런 유행어가 정현준 게이트 이후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예쁜 주주명부' 를 가진 벤처들은 "디지털라인 다음 차례는 ××" 라는 제2, 제3의 정현준 사태 타깃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올해 초 5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A사에는 개인투자자들로부터 "주주명부를 공개하라" "주식과 자본 이동 현황을 알고 싶다" 는 문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기관으로부터 13억원을 투자받은 B사는 최근 자본 흐름 감사 통보를 받은 상태다.

정현준 게이트가 올 하반기 들어 코스닥 주가 하락과 투자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던 테헤란 밸리를 '동토(凍土)' 로 바꿔놓고 있다.

내년 초 코스닥 등록을 목표로 하던 벤처들도 하나둘씩 등록 연기를 고려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업체 C사는 올해 실적을 바탕으로 코스닥 등록을 하겠다는 계획을 지난 주 수정했다. 전자부품 제작 툴을 제조하는 D사는 국내 투자유치를 포기하고 해외 자본을 유치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직원들도 동요하고 있다.

金모(31)사장은 "직원들이 코스닥 등록 전까지 처우개선.임금인상 등의 요구를 자제하는 분위기였으나 요즘은 '미래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며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고 답답해 했다.

하지만 "대다수 건실한 벤처를 헐값에 넘기지는 말아야 한다" 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최근 테헤란밸리에서는 기술을 개발하고 건실하게 벤처를 꾸려가는 '장군' 들이 돈 끄는데 치중해 초법적 행동을 일삼고 있는 '자객' 퇴출에 나섰다.

벤처기업협회.인터넷기업협회 등은 지난달 30일 중앙일보 등 4개 일간지에 '정현준 등 벤처기업인 관련 금융사건에 대한 우리의 입장' 이라는 성명서를 게재했다.

이들은 "정현준은 벤처기업가가 아니며, 이번 사건은 사이비 금융전문가의 주가조작과 관련된 일련의 불법행위 사건" 이라며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애정과 신뢰가 필요하다" 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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