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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부도 넘긴 현대건설]

중앙일보

입력

"살고 싶다면 은행과 시장을 설득하라. " 오는 3일 부실징후기업 명단의 발표를 앞두고 정부가 기업들에 보낸 최후통첩이다.

더 이상 실업문제나 경기.은행 경영악화를 걱정해 부실기업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뜻이다.

기업을 살릴 자신이 있다면 돈을 대줄 은행과 시장을 설득해 자금지원을 이끌어내고 그걸 못한다면 정부로서도 원칙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부의 의중은 지난달 30일 동아건설 채권단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중단결정에도 전달됐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가 아깝긴 하지만 채권단이 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면 정부도 채권단 결정을 따르겠다고 발표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생사여부를 판정받아야 할 다른 대기업들도 3일 이전에 시장이 납득할 만한 자구계획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동아건설의 운명을 닮아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설마 우리를 죽이지는 못할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다. 정부가 살려주고 싶어도 살려줄 방법이 없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의 이같은 발언이 더 이상 엄포가 아닌 것 같다.

현대건설이 지난달 30일 1차 부도를 냄으로써 현대건설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실천 가능한 자구계획과 오너의 사재출연을 요구해온 정부.채권단과 현대의 줄다리기가 결국 1차 부도라는 상처를 내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채권단에 맡기는 방식으로 동아건설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단을 가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로선 채권단이 요구하는 강도높은 자구계획을 추가로 내놓지 않으면 채권단이 제시한 출자전환으로 경영권을 위협받거나 최악의 경우 법정관리에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지난주 중반부터 전방위 압박=현대건설이 1차 부도를 낸 것은 10월에 채권단이 1천4백억원의 기존 대출금을 회수했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지난주 중반부터 잇따라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SK생명은 지난달 26일 갑자기 현대건설에 차입금 2백억원을 갚으라고 요구했고, 현대건설은 27일 이를 갚았다.

주말인 28일에도 외환은행 차입금 5백억원과 진성어음 7백70억원이 한꺼번에 몰려 하청업체에 지급할 공사대금을 돌려 부도 위기를 넘겼다.

30일 또다시 신한은행 등에서 어음 4백억원이 돌아오자 현대건설은 2백39억원만 결제하고 나머지 1백61억원을 메우지 못해 1차 부도를 냈다.

현대는 31일 1차 부도금액과 이날 새로 돌아온 어음 19억8천만원을 오후 늦게 기성금(공사가 진척되면 받는 대금)으로 막았다.

현대는 이날 공사대금으로 현금 3백95억원을 받아 해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오는 3일 신주인수권부사채(BW) 9백억원의 만기가 돌아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 관계자는 "부도 위기를 넘겼다고 안심할 수 없는 분위기" 라며 "채권단이 자금 지원 여부에 대한 분명한 의사를 밝혀야 한다" 고 말했다.

현대는 올들어 네차례에 걸친 자구계획을 발표하면서 연말까지 빚 1조5천억원을 줄여 부채를 4조4천억원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으나, 10월 말 현재 절반 수준인 7천7백31억원을 갚은 상태다.

◇ 현대, 긴급 사장단회의=현대는 31일 오전 8시30분부터 긴급 사장단회의를 열고 대책을 숙의했다.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이 회의를 주재했고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정재관 현대종합상사 사장.김재수 구조조정위원장 등 정몽헌 계열 사장단이 대부분 참석했다.

비공개로 열린 회의에서 계열사가 현대건설을 당장 자금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 중공업과 자동차는 '우리와 관련이 없다' 며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모인 계열사 사장단은 현대건설이 발행할 전환사채(CB)를 매입하는 등 자금지원 방법을 논의했다.

현대건설은 지난달 18일 네번째 자구계획에서 CB 8백억원을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에 매각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거부당한 적이 있다.

사장단회의는 채권단의 요구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외환은행은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갖고 있는 유가증권 등을 추가로 담보로 내놓아야 신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채권단의 최근 자금회수 움직임을 볼 때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유가증권 사재 출연을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 말했다.

한편 정몽헌 회장은 지난달 4일 일본으로 출국한 뒤 현재 미국에 머물며 전화로 상황을 보고받고 있다.

鄭회장은 이번주 초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돌아와도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이유로 귀국을 늦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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