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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노사관계 전문가 좌담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노동계가 근로시간 단축과 비정규직 근로자(전체 임금근로자의 52%) 보호를 내세우며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는 등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노동계는 또 올 하반기로 예정된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방침에 대해 파업 불사를 외치며 강경 투쟁입장을 밝히고 있다.

노동계의 동요는 어려운 경제상황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호진(金浩鎭)노동부장관이 한국노사관계학회 초청으로 방한한 미국과 프랑스의 세계적인 학자 두명과 만나 선진국들이 대립적 노사관계를 어떻게 헤쳐나왔는지에 대해 대담했다.대담은 지난 21일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실에서 있었다.

김호진 노동부장관=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해가고 있습니다.경제회생의 발판이 마련된 데는 노사 협력의 공이 크다고 봅니다.

노사정위원회를 발족하고 노.사.정 3자가 머리를 맞댔습니다. 미국과 프랑스도 과거 경제가 어려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노사는 어떻게 움직였습니까.

메리클 교수(미국)=미국은 경제위기 때 한국 노사정위처럼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80년대 초 오일쇼크로 경제위기를 맞자 많은 회사가 구조조정을 하고 폐업을 했습니다.

당시 노사관계는 매우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적대적 노사관계에서는 양측 모두 얻을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80년대 중반부터는 강성기류가 많이 퇴조했습니다.

이후 노사관계가 협력적으로 변했고 이젠 함께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슈발리에 교수(프랑스)=프랑스도 유럽경기가 나빠지던 80년대 말 어려움에 놓인 적이 있습니다. 실업률이 12%나 됐습니다.

실업은 사회적 무력감을 야기했고, 회사가 어려워지자 노조도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과거보다 요구를 덜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위기의식이 어느 정도 노사 갈등을 해소해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90년대 초반 이후 대립적인 방법이 아닌 타협적인 방법으로 협의가 이뤄지고, 노사 모두 자기들의 주장만을 관철하려는 입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김호진=노사가 대립관계에서 협력관계로 발전하기 위한 요체는 무엇입니까.

메리클=미국 노사관계에서 20세기 초반은 노조의 폭력사태가 빈발하는 등 갈등의 시기였습니다. 경찰이 파업 시위대에 발포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노동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노동조합이 법적으로 인정됐고 사용자도 노조의 실체를 인정하고 존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미국 노사관계에서 노사 동반성장의 규칙이 확립된 것은 사회적으로 노조의 긍정적 역할이 인정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때문입니다.

또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협력적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대립관계가 발생하더라도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점을 반드시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슈발리에=프랑스에서는 60년대와 70년대 특히 자동차 및 중공업 부문에서 폭력을 동반한 파업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런 극한 투쟁은 점차 찾아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프랑스의 노사관계에서는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공유하는 정보의 질이 우수하며 정보의 공유가 매우 활발합니다.

이론적인 논쟁을 가급적 자제하고 실제 산업현장의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김호진=요즘 '생산적 복지' 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는 시혜적인 차원의 사회복지 서비스와는 달리 일을 통한 적극적 복지를 의미합니다.

메리클=미국의 복지제도는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은 근로를 통해 혜택을 받도록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수혜대상 계층은 ▶자녀양육▶의료 ▶교육 등에 있어 보다 많은 혜택을 필요로 합니다.

대부분의 저임금 작업은 이러한 혜택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복지개혁이 성공하려면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입니다.

김호진=지금은 디지털 시대입니다. 인터넷 혁명은 이른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를 초래해서 새로운 빈곤층을 낳게 됩니다. 예컨대 디지털 계층과 아날로그 계층은 정보격차가 심해 소득격차가 벌어지게 되지 않습니까.

메리클=97년 기준으로 미국 지식근로자의 평균연봉은 5만2천달러지만 일반근로자는 3만달러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정부는 일반근로자.가정주부.군인.재소자.빈곤층 자녀 등 정보화 소외계층에 대한 디지털 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또 기업주가 근로자 급여의 일부를 떼내어 기술을 배우고 사용하는 데 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많은 기업이 노조와 함께 직장내에 교육기관을 설치해 근로자가 일반교육을 받고 직무와 관련된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슈발리에=프랑스는 71년 평생훈련법을 제정, 기업이 근로자 임금의 최소 8% 이상을 근로자 훈련에 투자하도록 규정했습니다. 그 결과 사내 직업훈련과 교육이 매우 활성화했습니다. 사립교육기관도 일반 학생을 가르치는 것 이외에 기업 간부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곳이 많습니다.

김호진=최근 고유가 등으로 경제가 다시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노사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경쟁력 강화를 통한 경제 살리기에 주력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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