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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이 사람] 천안시모닥불봉사회 김형래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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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천안시모닥불봉사회 김형래 회장이 최근 만든 회원의 집 마크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조영회 기자]

#1 학교 탁구 선수로 활동중인 이민희(11·여·가명)양은 부모가 이혼한 후 어머니와 함께 지내다 어머니까지 가출하면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게 됐다. 경제적 능력이 없어 좋아하는 탁구를 포기할까도 했지만 천안시모닥불봉사회의 후원으로 국가대표 탁구 선수의 꿈을 다시 키울 수 있게 됐다.

#2 김동욱(17·가명)군은 8년전 아버지가 투병 끝에 사망한 뒤 어머니와 2명의 동생만 남게 됐다. 하지만 정신지체 3급인 어머니가 일을 할 수 없어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모닥불봉사회의 후원이 없었다면 동욱이는 희망의 끈을 놓았을지 모른다.

#3 지난해 아버지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어머니와 단 둘이 살게 된 윤태훈(18·가명)군. 어머니는 몇 년 전까지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파킨스병 진단을 받은 뒤 취업조차 어려워진 상태다. 태훈군은 자신이 처한 현실이 비관적이었지만 모닥불봉사회를 만난 후 좀더 강인해졌다.

천안시모닥불봉사회 김형래 회장에게는 집에서 함께 지내는 1남2녀의 자녀 외에도 20명의 소중한 아들·딸들이 있다. 김 회장이 이끌고 있는 모닥불봉사회는 가정 해체로 인해 경제적 빈곤에 빠진 불우 청소년들을 위해 매월 10만원씩의 후원금을 전달하는 순수 봉사단체다.

 또 금전적 후원 외에도 명절·크리스마스·입학식·졸업식 등 가족의 따뜻함이 필요한 시기가 되면 후원 아동·청소년들을 방문해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거주 환경이 열악한 아이들은 직접 가정을 방문해 화장실 수리, 도배, 장판 교체, 컴퓨터 지원 등 좀더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가정 해체로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는 일부 청소년들이 청소년 비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큰 돈은 아니지만 누군가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 청소년들이 좀더 희망적으로 살아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봉사활동이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230명 가입 순수 후원단체 10년째 이끌어

지금은 모닥불봉사회가 230여 명의 회원들이 매달 지원하는 1만5000원의 회비로 운영되고 있지만 처음부터 큰 규모의 봉사단체는 아니었다. 지난 93년 김 회장은 10명의 지인들과 만나 단순히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보다는 좀더 뜻깊은 일을 해보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단 몇 명의 아이들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모닥불봉사회의 활동이 조금씩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해마다 회원이 늘기 시작했다.

“봉사활동에 동참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한때 회원수가 700여 명이 넘기도 했어요. 그런데 회원수가 늘면서 일부 회원들 중에는 봉사활동 보다는 자신의 사업이나 정치적으로 모닥불 회원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 있는 회원들은 탈퇴하도록 했죠. 지금도 회원수가 조금씩 변동되기는 하지만 남아있는 회원 대부분은 봉사에 뜻을 두고 있는 분들 입니다.”

김 회장은 매월 후원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숫자를 20명에서 25명으로 늘리는 것이 올해 목표다. 김 회장은 이를 위해 봉사에 뜻이 있는 정회원을 250명까지 늘리기 위해 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봉사활동은 내 행복 쌓아가는 작은 실천”

김 회장은 지인들과 모닥불봉사회를 만든 것에 대해 언제나 뿌듯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올해는 그 어느해보다 더 큰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모닥불봉사회의 후원을 받았던 최상우(22)씨가 졸업 후 취업에 성공해 지난 1월 모닥불 회원으로 가입했다. 또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학업을 포기하려고 했던 김민성(20)씨는 모닥불봉사회의 후원에 힘입어 야간대학까지 합격해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얼마전 김씨는 모닥불봉사회에 편지를 보내 졸업 후 취업을 하면 반드시 모닥불 회원으로 가입해 어려운 후배들을 돕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다고 한다.

“모닥불 후원금은 고등학교 졸업까지만 지원하고 있어요. 그런데 벌써 사회에 진출해 자신이 받은 도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겠다는 녀석들이 생기고 있으니 정말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사랑이 돌아오는 것을 보니 앞으로 더 열심히 봉사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김 회장은 군대에서 배운 자동차 기술을 바탕으로 서울과 천안의 카센터에서 성실히 일한 끝에 93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자동차 공업사를 차렸다. 정비 직원으로 일하다 사장이 된 김 회장은 조금은 풍족해진 삶을 이웃들과 나누겠다는 생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지금은 모닥불 외에도 교복 물려주기, 사랑의 도시락 배달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 회장은 “많이 가졌다고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지금 하고 있는 봉사활동 역시 어쩌면 내 행복을 쌓아가기 위한 작은 실천일지도 모른다. 올해는 계획한 대로 25명의 아동·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후원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낮에는 자동차 수리, 밤에는 봉사활동을 하며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김 회장이지만 그의 입가에는 언제나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글=최진섭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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