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성공하든 실패하든 대통령은 집권당 일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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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자신은 탈당(脫黨)하지 않을 것이며 당적을 가진 채 공정한 선거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원칙적인 면에서 옳은 선택이다. 대통령은 선택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총선·대선에서 선거 중립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미국이나 한국 같은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과 여당은 집권의 공동책임을 진다. 특히 한국에선 거의 모든 정책이 당정(黨政) 협의를 통해 완성된다. 집권당은 정책의 국회 통과를 주도한다. 한국에선 집권당 의원들이 내각에 참여하는 일도 많다. 대통령의 성적은 집권당의 선거에, 집권당의 활동은 대통령 지지율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구조에서 대통령과 여당은 공동운명체며 정권의 성공과 더불어 실패도 공동 책임인 것이다. 이런 원리에 따라 미국에선 탄핵(닉슨)이나 섹스스캔들(클린턴) 같은 대형 사건이 터져도 대통령이 탈당하는 일이 없었다. 훌륭하든 못났든 대통령은 집권당의 일부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대통령이 임기 말에 탈당하는 기이하고 불행한 사태가 반복돼 왔다. 겉으로는 대선의 공정 관리라는 명분이었지만 대부분 속내는 대통령의 치명적 실정(失政), 그리고 대통령과 후보세력 간의 불화였다. 1992년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후보는 노 대통령의 사돈인 SK그룹이 이동통신사업을 허가받는 문제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김 후보는 선거관리 개각 등을 요구했으며 노 대통령은 전격적인 탈당으로 김 후보와 선을 그었다.

 97년 이회창 후보 세력이 정치집회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허수아비를 태울 정도로 양측의 갈등은 심각했다. 김영삼계인 이인제 경기지사가 출마하고 김대중 당시 야당 후보의 비자금 의혹에 대해 김 대통령이 검찰 수사 유보 결정을 내린 것 등이 원인이었다. 김 대통령은 그해 11월 탈당했다. 2002년 5월 김대중 대통령은 세 아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돼 물의를 빚는 것에 대해 사과하고 민주당을 탈당했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 측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결정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7개월 만인 2003년 9월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집권 민주당을 탈당했다. 그러고는 새로운 열린우리당에 참여했다. 그러나 임기 말에는 정동영·손학규를 포함한 열린우리당 중추세력이 당을 버림으로써 노무현 대통령의 당적도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적을 유지하되 ‘노무현 선거 개입 탄핵 파동’을 상기해 선거 중립에 철저해야 한다. 2004년 4월 총선을 2개월 앞두고 노 대통령은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선관위는 공직선거법 위반이란 판정을 내렸다. 야당은 이런 사유 등을 이유로 대통령 탄핵을 의결했던 것이다. ‘이명박 당적 유지’는 90년대 이래 한국 정치사의 중요한 실험이다. 대통령은 의무를 지키고 야당은 ‘탈당’같은 정치공세를 억제해 대통령책임제 정치의 한 단계 발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