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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냉키 연준 의장, ‘곰돌이 푸’의 소심한 당나귀 되려는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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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호 21면

벳시 스티븐슨(왼쪽)·저스틴 울퍼스 미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 교수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벤 버냉키 의장은 새로운 소통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금리를 되도록 낮게 유지하겠다는 연준의 중장기 계획을 시장에 밝힌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버냉키 의장의 ‘소심한’ 접근방식 때문에 이 전략에 실패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비유컨대 ‘곰돌이 푸’(미국의 유아용 인기 만화영화)의 배경이 되는 숲 속 나라를 생각해 보자. 꿀을 흥청망청 쓴 탓에 숲 속 경제가 궁핍해졌다. 소심한 당나귀 이요르와 낙천적인 호랑이 티거는 이 숲 속 나라 곳곳의 연방준비은행 의장이다. 이들은 금리를 오랫동안 낮게 억누르는 방식으로 경제를 되살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같은 방향이라도 둘의 방식은 좀 다르다. 이요르 의장은 비관론자라 침체가 오래갈 것으로 본다. 비관 전망을 시장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걱정한다. 그는 “경제가 너무 어려워 몇 년간 금리를 낮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메시지가 너무 강하다 보니 저금리의 경기 진작 효과마저 약화시킨다. 경기 전망이 너무 나빠 2년이나 금리를 올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판에 투자자들이 금고를 열려고 하겠는가. 티거 의장의 접근방식은 좀 다르다. 신나는 파티를 앞두고 사람들이 생기를 되찾는다는 걸 안다. 또 경기가 살아날 만하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곤 했고, 이에 대해 시장이 불만스러워한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그는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당분간 금리를 낮게 유지하겠다”고 약속한다.

이요르와 티거의 말은 기본적으로 같다.금리를 수년간 낮게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 전하는 메시지는 사뭇 달라 다른 결과를 낳는다. 이요르는 ‘전망’을, 티거
는 ‘정책’을 암시한 것이다. 티거는 중앙은행이 무엇을 할 것인지 알려 줌과 동시에 웬만한 상황에도 이를 밀고 나가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렇다면 버냉키는 이요르와 티거 중 누구를 따르려고 할까.

연준은 “경제여건 때문에 기준금리를 2014년 후반까지 이례적으로 낮게 유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예측한다”고 발표했다. 마치 이요르의 말처럼 들린다. 연준은 낮
은 금리를 예상(anticipate)은 하지만 약속(promise)하지는 않았다. 이는 적잖은 차이다. 버냉키가 티거처럼 보이려 하다가도 경기가 좀 좋아지면 이요르로 돌변하지 않을까 업계에선 의심한다. 버냉키 의장이 시장에 제대로 된 메시지를 주려면 경제가 나아져도 당분간 금리를 낮게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전달할 필요는 없을까. 그게 ‘소심한 당나귀’라고 오해받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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