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데도 돈드는 우주정거장 미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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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우주항공 기술의 자부심이 돼 왔던 우주정거장 미르가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계륵(鷄肋)'' 신세로 전락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버리는데도 적지않은 자금이 들어가는 액물로 변하고 있는 양상이다.

일리야 클레바노프 러시아 부총리는 23일 기자들에게 우주선 `프로그레스''호가 최근 미르에 궤도 상승에 필요한 연료를 공급했지만, 다음 번에는 수장(水葬)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실어 나르게될 것이라면서 "미르가 내년 2월말께 태평양에 수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산외 운용자금이 확보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는 통상적인 발언을 덧붙였지만 "정부가 빠른 시간내에 이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게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미르 자체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지속적인 궤도 하강.

미르호는 지난달말부터 태양표면의 활동이 강력해지면서 매일 300-500m씩 하강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이를 정상궤도에 되돌려놓기 위해 지난 16일 우주선 `프로그레스-M''을 발사, 필요한 연료를 공급했다. 미르의 현재 위치는 지상 300km 이상이며, 지상 250km 이하로 떨어질 경우, 위기상황이 발동된다.

문제는 이것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다. 정부의 위탁을 받아 미르를 운영하고 있는 에네르기야사(社)의 유리 세묘노프 사장은 23일 "미르호가 다시 지속적으로 하강하게될 내년 2월전까지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이와 함께 지속적으로 하강하게될 미르호를, 역시 매번 적지않은 자금이 들어가는 연료공급이라는 방법을 통해 무한정 유지하는 것보다는 일찌감치 폐기하는 게 낫다는 판단도 미르호의 폐기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당초 올상반기 태평양에 폐기될 예정이었다가 지난해 8월부터 무인 우주정거장으로 방치됐던 미르가 극적으로 소생한 것은 미국계 다국적 기업인 골드 앤드 어팰(Gold & Appel S.A)사(社)가 지난 1월 미르호의 운영자금 2천만 달러 지원을 약속한데 이어 지난 2월에는 에네르기야사(社)와 합작사인 미르코프(MirCorp)를 설립했기 때문.

그러나 미르코프의 이사장이기도 한 세묘노프 사장은 "정부가 미르호 폐기를 결정하게되면 미르코프 역시 세계 유수의 주식시장에 주식을 상장, 1억달러를 모으려는 자체 계획의 실행을 포기하게될 것"이라면서 미르호의 폐기에 무게를 뒀다.

에네르기야사의 전문가들도 이 회사가 빠른 시일안에 미르의 추가 운항보다는 미국과 러시아 등 16개국이 공동 참여하고 있는 차세대 우주정거장 ISS 건설로 방향을 급선회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지적하고 있다.

문제는 미르호의 폐기에 그치지 않는다. 세묘노프 사장은 24일 "137t짜리 미르를 폐기하기 위해서는 6억루블(약2천만달러)의 비용이 소요되며 이를 전액 정부가 예산 지원해야할 것"이라고 촉구했지만,알렉산드르 데레친 에네르기야사 국제경제관계국장은 "정부가 돈을 주지 않을 것이란 점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면서 에네르기야사가 다른 상업위성발사로 벌어들인 수입의 90%를 미르호 폐기에 충당하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30억달러짜리 러시아연방정부 재산''으로 분류돼, 세계 유일의 우주정거장으로써 15년 동안 러시아 우주항공기술의 상징이 돼온 미르가 계륵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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