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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권 바뀌면’이라고 협박한 정동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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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961년 본격적인 산업화에 착수한 지 26년 만인 87년 한국은 민주화까지 이뤄냈다. 그로부터 10년 후 한국 사회는 또 하나의 중요한 민주화 발전을 이룩했다. 지역 간(영·호남) 그리고 여야 간 정권교체를 달성한 것이다. 이후 2007년에서 보듯 여야 정권교체는 한국 정치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정치와 시민사회의 성숙한 변화다.

 여야 간 정권이 바뀔 때 변할 수 있는 게 있고 변할 수 없는 게 있다. 국가의 정책은 합리적인 조정 절차를 거쳐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대북이나 복지·세금·개발 정책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적 질서나 가치체계는 정권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은 국가의 영속성을 지탱해주는 기본 구조여서 정권교체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제주 해군기지는 국가의 대외신용 그리고 한·미 동맹과 국가안보라는 기초적 질서와 관련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찍이 이를 알았기 때문에 두 정책을 적극 추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당이 집권하면 이런 조약이나 정책을 취소하겠다고 공언하는 건 정권교체의 의미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엔 이런 차원을 넘어 공포스러운 협박까지 등장하고 있다. ‘정권 바뀌면’이라는 위협이다. 민주통합당 정동영 고문은 7일 제주 해군기지 반대투쟁 현장에서 정인양(해군 준장) 제주기지사업단장에게 “4·11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된다. 연말엔 정권도 바뀐다. 당신이 지휘관이라면 결단을 내려라. 당신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취지로 위협했다.

 정 고문은 노무현 정권에서 통일부 장관으로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원장을 지냈다. 집권당 대표도 역임했으며 2007년엔 대통령 후보까지 지냈다. 그러므로 그는 누구보다 국가의 영속성과 정책 계승의 필요성을 잘 알 것이다. 그리고 정책의 필요 여부를 떠나 군 실무책임자에게는 국가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라는 걸 알 것이다. 그런 사람이 국가의 정책을 성실히 집행하는 충성스러운 대한민국 장군을 협박했다. 이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정책 일관성을 부정하는 언행이다. 그의 이런 언행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한진중공업 사태 국회 청문회에서 그는 조남호 회장에게 다가가 ‘내년 봄이면 여소야대가 된다. 세상이 바뀐다’는 취지로 위협을 가했다.

 주요 정치지도자의 이런 행동은 상당수 국민에게 정권교체에 대한 불안감을 심어주게 된다. 이는 민주주의 발전에 위험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한·미 FTA 폐기 공언으로 적지 않은 지지를 상실했다는 자성(自省)이 있는 상황이다.

정동영의 발언은 국가에도 위험하지만 당에도 자살 골이다. 전직 집권당 대통령 후보의 품위가 곧 국가의 품위다. 정동영이 이 나라의 여당 대통령 후보였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다.